▲ 미 해병대 용사들이 혹한을 뚫고 장진호 전투 현장을 행군하고 있다.

949고지 전투는 6·25전쟁이 1951년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전 전선의 윤곽이 확연히 드러났을 때, 백석산 서쪽에 형성돼 있던 전선을 949고지까지 밀어올리기 위해 미 제9군단과 미 제10군단이 협조한 작전으로 추진된 공격전투다.

이 전투에서 미 제9군단 통제 하의 국군 제6사단과 미 제10군단 통제 하의 국군 제8사단 21연대가 제6사단장의 지휘 아래 백석산 서쪽의 북한강 연안에서 공격을 개시해 949고지 일대에 배치돼 있던 중공 제68군 소속의 제 202사단과 제 204사단의 진지를 돌파하고 공격 개시 2일 만에 949고지를 점령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보다. 적군의 진지 상태와 지형을 알게 되면 전투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49고지 전투에서 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철 육군 중위가 수집한 정보가 큰 역할을 했다.

도 중위는 949고지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홀로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진의 정보를 확인하던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러나 도 중위가 목숨을 걸고 수집해 보고한 2차례의 정보보고서는 아군이 공격을 개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어은산 북쪽으로 물러나게 됐으며, 국군은 중동부 전선의 주 저항선을 조정해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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