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삽을 뜬 그의 표정이 상기돼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6·25참전용사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지난 2010년 한국전쟁기념재단(KWMF)을 설립하고 모금활동을 벌여온 지 꼭 6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담긴 표정이 잠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6·25참전용사 아버지를 둔 그 자신도 보훈가족인 재미교포 사업가 김만종 씨를 만났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뒤 작은 샌드위치 가게부터 시작해 하나 둘 늘려 현재는 대형 레스토랑을 8개나 보유한 사장님이 됐다.

그는 사업이 조금씩 안정되자 지난 2004년부터 13년 째 매년 6월 25일이 되면 6·25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자신의 식당으로 초청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작은 위로회 등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했어요. 가난했고 늘 배가 고팠죠.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미군 트럭 한 대가 옆으로 잠시 멈춰서더니 우유 하나를 건네줬어요. 참 맛있게 먹었고 고마웠습니다.”

김 씨는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매년 식사 초청을 하게 됐다고 했다.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거의 폐허나 다름없던 나라가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성장해 매년 잊지 않고 보답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십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배곯았던 시절을 빨리 지나가게 해주고 이렇게 성장시켜 준 박정희 대통령이 함께 떠올라서 울컥하곤 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그 분의 공로를 계속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매년 만나 인사를 드리다 몇몇 참전용사들에게 젊은 나이에 잃은 전우를 추모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정을 듣게 됐다. 그는 미국 6·25참전용사들이 출항하고 생존용사와 전사자 유해가 귀환하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전우를 추모할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실에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기념비 건립을 마음먹게 됐다고. 그는 당장 재단을 설립하고 스스로 약 1억 2,000만 원 정도를 재단에 기부했다.

“모금 실적이 거의 없어서 기념비 건립비용을 낮춰야 하는지 고민했을 정도였어요. 이후 미국 정부에서 참전기념비 설립 용지를 확보해줬고,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을 통해 한인 사회에 협조 요청도 했습니다. 마지막 고비를 넘어설 즈음 국가보훈처가 국고보조금 100만 달러를 지원해 힘이 됐죠. 의미 깊은 일에 공감한 많은 분들과 기업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기념비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국립공원에 세워진 6·25전쟁 참전기념비.

6·25전쟁 참전기념비는 한국전 참전용사 2,237명이 잠들어 있는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국립공원 정문 앞에 세워졌다. 재단 설립 6년, 첫 삽을 뜬지 13개월 만에 맺은 결실이다. 우리나라가 있는 서쪽을 바라보는 검은 화강암 벽에는 우리나라 지도에 남북 분단을 표시해 6·25전쟁의 경과와 의미를 설명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졌다.

재단은 앞으로도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참전용사를 초청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유익한 일에 쓰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며 웃는 그에게서 진짜 한국인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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