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또는 죽음을 상기시키고 상징하는 해골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로마제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로마로 입성할 때 그 장군의 뒤에는 노예가 따라오면서 ‘메멘토 모리!’라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당시 로마로 돌아온 개선장군 중에는 권력에 대한 야심을 품고 모의를 하다가 적발돼 처형당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감에 도취해 경거망동하지 말고 더욱 자중자애하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절대 겸손해야 하며 자만과 교만의 미혹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려주는 이 외침이야 말로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행위인가.

우리나라에도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는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맹사성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9세에 장원급제해 지방의 군수로 부임한 맹사성은 어느 날 무명선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선정을 베풀 수 있냐고 물었다.

무명선사가 선한 일을 하면 된다고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하자 자존심이 상한 맹사성은 내가 겨우 그 정도의 말을 듣겠다고 당신을 찾은 줄 아느냐고 벌떡 일어섰다. 맹사성의 이 반응에 무명선사가 차나 한 잔하고 가라면서 찻잔에 물을 따르는데 넘쳐흘렀다.

마지못해 앉은 맹사성이 물이 넘친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물이 넘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훼손시키는 것은 왜 모르느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수치심을 느낀 맹사성은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쳤다. 이를 본 무명선사가 ‘고개를 숙이면 절대 다치는 법이 없다’라고 했다.

무명선사의 이 같은 지적과 가르침은 맹사성으로 하여금 겸양지덕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청백리의 삶을 살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가장 경계하고 삼가야하는 것이 자만과 교만이며 지녀야 할 덕목은 자각과 겸손이다. 우리들의 지난 삶들을 뒤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실패와 성공의 결과가 유물처럼 남아있다. 실패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엄격한 자기성찰과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자초한 실패의 원인을 편의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또 실패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외부귀인으로 전가시켜 비겁한 자기방어를 하고 성공은 오직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자만하며 교만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삶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동서양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면서 로마로 입성하는 개선장군의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쳐주던 그런 사람, 혹시 어디 없을까? 그런 외침을 다시 들을 수 없을까? 겸양지덕의 삶을 실천한 맹사성 같은 그런 사람이 이 시대에는 정녕 없을까? 하고 자문해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귀를 곤두세우고 눈은 시리도록 치켜떠서 어디 그런 사람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수소문해보고 싶다.

 

김영식(월남참전유공자, 참전용사의 애환을 담은 장편소설 ‘초조한 마중’이 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