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하택례 지회장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책 발간 이후에도 하 지회장은 회원들과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달 5일 하택례 지회장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책 발간 이후에도 하 지회장은 회원들과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문학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데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전몰군경미망인회 은평구지회 회원 18명이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긴 세월을 견뎌낸 생애를 수필과 시로 써내려간 문학집 ‘흰 국화꽃’을 펴냈다. 상실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글 모음인 셈이다. 지난 3년간 회원들과 함께 수필과 시를 배우고, 원고를 써내려가며 책의 발간까지 이끌어낸 하택례(70) 은평구지회장을 만났다.

“혹자는 할머니들, 초보자들이 쓴 글이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3년간 생각을 모아내고 글로 다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긴 세월을 견디면서 얻은 삶의 지혜와 향기를 담았습니다.”

‘찬 서리 비바람 맞으며 외롭고 서글픈 계절에 핀 국화꽃(중략) 사그락 스치는 바람결에도 눈물이 흐른다.’ 하택례 지회장의 시 ‘흰 국화꽃’의 한 구절로, 문학집의 첫 머리에 실어 글쓴이들의 마음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문학집 ‘흰 국화꽃’에는 그를 포함해 장성예, 강복남, 김경희, 유순분, 이월출, 윤석칠, 박수명, 박정순, 이규남, 유경숙, 임판심, 이분연, 문신임, 김분예, 남계숙, 김종순, 홍맹봉 등 18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그저 문학으로 회원들의 마음에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운 임에 대한 시를 쓰고, 고향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수필로 써내려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문학집 발간을 주도한 하택례 지회장도 50대에 글쓰기를 시작한 늦깎이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그는 50대에 상이군인이었던 남편을 여의고 큰 실의에 빠졌지만 깊은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시와 수필을 배우는 한편, 이웃을 향한 봉사를 시작했다. 복지회관과 요양원 등으로 봉사를 다니던 중 충주보훈휴양원과 인연이 닿았고, 선배 미망인들을 돕고자 전몰군경미망인회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 은평구지회에서 글쓰기 공부를 함께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회원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고자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소통이 단절되자 하 지회장은 고령에 접어든 회원들의 자택을 들러 건강을 살피며 말벗 역할을 자임했다. 선배 미망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시와 수필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우리 회원들의 어린 시절인 70년 전에는 대부분 형편이 어려웠고, 특히나 여성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분위기였죠. 어르신들 중에는 한글만 겨우 아는 분도 계셨고, 평생 긴 글을 써본 적 없는 분도 계셨어요.”

첫 해는 연세대 미래교육원 조영갑 지도교수가 보훈창작 강좌를 열었고, 이후부터는 하택례 지회장이 강의를 이어나갔다. 거동이 가능한 분들은 지회로 나와 수업을 들었고, 요양원에 계시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자택을 방문해 글쓰기 공부를 계속하도록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지던 수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3년의 세월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강의를 들으러 오는 분들을 보며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보람 있습니다. 눈에 보이게 남은 성과가 바로 이 책이지요.”

지난해 12월 8일 은평구보훈회관에서 열린 문학집 발간식에는 발간에 참여한 회원들은 물론, 문학집 발간비용을 지원해준 은평구청 관계자와 조영갑 지도교수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발간된 문학집은 전국의 전몰군경미망인회지부에 배포돼 큰 박수를 받았다.

“무엇보다 6·25참전유공자의 미망인분들의 목소리를 남긴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90세를 넘기고 100세를 바라보고 있는 이 분들의 증언을 세상에 남기고, 또 널리 알리는 것.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벌써부터 하택례 지회장에게 다음 책을 내자는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그 역시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하 지회장은 “더 많은 미망인들의 글이 세상에 나오길 바랄 뿐”이라며 다음 발걸음에 대한 계획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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