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성벽에서 바라본 금서루. 공산성의 현재 성벽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쌓은 것이지만 그 아래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토성이 남아있다.
공산 성벽에서 바라본 금서루. 공산성의 현재 성벽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쌓은 것이지만 그 아래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토성이 남아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와 함께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뤘던 백제는 한강과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찬란하고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지난 2015년 금강 유역권의 공주·부여·익산에 산재한 백제 유적지 8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이후,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유유히 흐르는 금강 물줄기를 따라 백제문화유적지로 떠난다.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공주 금강을 가로지르는 백제큰다리를 건너가면 바로 공산성을 만난다. 백제가 두 번째 왕성으로 사용했던 웅진성이 있던 곳이다. 공산성은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에는 산세를 따라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

공산성의 주출입구인 금서루에서 시작하는 공산성 탐방로는 전체 2.6킬로미터 가량으로, 잘 정비돼 있어 산책 삼아 걷기에 제격이다.

공산성에서 서남쪽으로 1.5킬로미터 가량 내려가면 백제의 25대 왕인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만날 수 있다. 1971년 송산리 고분 배수로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비 금제관장식(국보) 등 5,20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됐다. 이곳에는 당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무령왕릉전시관도 함께 조성돼 있어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찾기에 좋다.

부여, 부소산성과 낙화암

백제는 26대 왕인 성왕 대에 이르러 웅진 백제 시대를 마감하고 부여에 새로운 도읍지를 세웠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사비성이다.

부소산성은 평소 왕이 즐겨 찾는 후원이었고, 비상시에는 방어성으로 사용된 곳으로 낙화암, 고련사 등 백제의 전설과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부소산성 안쪽 강변에 위치한 낙화암에는 1929년 세워진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꽃처럼 떨어진 여인들’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 있다. 이곳에서는 공주 쪽에서 흘러와 논산 방향으로 굽이쳐 흘러가는 백마강(금강)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화암에서 강 쪽으로 내려가면 고란사가 몸을 숨기듯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부여에는 이외에도 정림사지, 나성, 왕릉원 등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다. 또한 백제금동대향로(국보)도 부여에서 발굴됐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익산 미륵산 기슭에는 백제 시대 최대의 절터인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국보)이 백제의 ‘혼’을 담고 서 있다.

백제 30대 왕인 무왕 시절 건축된 미륵사는 현재 중앙 목탑과 동측 석탑은 소실됐고, 서측 석탑만 파손된 채로 남아 있다. 동측 석탑은 1992년에 복원했고, 서측 석탑은 2001년부터 2019년까지 20여 년에 걸친 해체·보수 작업 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639년)에 건립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쪽이 무너져 내렸지만 14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며 위엄있는 자태는 여전하다.

미륵사지에서 남동쪽 5킬로미터 가량 내려가면 넓은 벌판에 거대한 5층 석탑이 덩그러니 서 있는 왕궁리유적이 나타난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유적지를 거니노라니 찬란한 문화를 피워냈던 백제인들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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