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켄지가 양평에서 촬영한 정미의병.
멕켄지가 양평에서 촬영한 정미의병.

경기 양평 지평리는 대한제국 수립 이후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의병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지평의병은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인근 강원지방과 충북지방 의병봉기의 도화선이 된 대표적인 척사의병이다.

1895년 10월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11월에 단발령이 공포된 후, 지평 출신 이춘영과 김백선이 이끄는 포수 400여 명이 국가의 위기를 인식하고 전국 최초로 의병을 창의했다.

지평의진을 창의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원주관아와 제천관아를 잇달아 점령하고, 단양의 장회협 전투와 충주성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냈다.

또한 지평은 1907년 정미의병 활동의 주요 전투인 삼산리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1907년 11월초, 각지에서 5,000여 명에 달하는 의병부대가 서울진공작전을 목표로 지평 삼산리에 집결해 일본군과 격돌했다.

일본군은 양평의 유서 깊은 사찰인 용문사, 상원사 등을 불태우는 등 강력히 탄압했으나 의병들의 항일의지는 독립군으로 계승돼 이후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2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의병전쟁 지역을 답사한 영국의 종군기자 멕켄지는 당시 상황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며 “그들(의병)은 비겁하지도 않았다”고 기록하고 “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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