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봉사를 준비하는 류성진 원장.
지난달 9일 군산시보훈회관에서 미용봉사 중인 모습.

간밤에 내린 눈으로 고요한 전북 군산시보훈회관. 겨울 찬바람을 뚫고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따스한 실내에서 정겨운 인사말이 오가는 가운데, 거울 앞에 앉은 어르신의 목에 흰 천을 두르고 머리칼을 다듬는 류성진(52) 원장을 향한 덕담이 이어졌다. 이곳 군산보훈회관에서 10년 넘게 미용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외출준비’ 미용실의 류성진 원장을 만났다.

류성진씨는 군산시 문화동에서 28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미용봉사를 하던 중 10여 년 전부터는 보훈회관과 인연이 닿아 한 달에 한 두 번씩 휴무일을 이용해 출장 미용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간 꾸준하게 봉사한 것을 인정받아 지방자치단체와 여러 기관에서 주는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이발을 마친 어르신들은 “덕분에 멋쟁이가 됐다”면서 류 원장의 손을 꼭 붙잡으며 “10년도 넘게 보훈회관에 꾸준히 와줘서 너무 고맙다. 항상 밝은 얼굴로 아들처럼 정겹게 챙겨주니 늘 반갑고 좋다”고 칭찬한다.

류 원장이 자립준비청소년들은 편한 시간대에 미용실로와서 미용을 받게 해주고, 이동이 어려운 지체장애인과 어르신들까지 때마다 출장 미용봉사를 하는 것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어렵게 사남매를 키우면서도 이웃들과 나누는 삶을 사셨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마다 ‘동냥’하던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집 형편도 결코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분들께 밥과 김치, 물을 꼭 챙겨주셨어요. 지난해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지 직전까지도 늘 이웃들을 챙기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보고 배웠을 뿐이죠.”

그는 지금도 50여 명의 자립준비청년들이 한 달에 한 두 번씩 미용실을 찾아오면 무료로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류 원장이 처음 미용봉사를 시작했던 20대 시절, 10대였던 자립준비청년은 이제 40대의 가장이 되어 명절이면 자녀들과 함께 그를 찾아 인사를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봉사를 하면서 말 한마디 조심스럽고, 아픈 날도 빠지기 어려우니 나날이 그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뵐 때면 아들 같이 예뻐해 주시고, 이런 저런 삶의 깨달음을 알려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뵙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죠.”

그중에서도 군산보훈회관과의 인연을 특별하다. 류 원장의 아버지 역시 6·25참전유공자로, 보훈회관에서 아버지뻘인 6·25참전유공자와 월남전참전유공자 어르신들의 머리를 다듬어드리는 것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는 명절이면 선물을 들고 보훈회관을 찾는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직업 군인으로서 근엄하면서도 멋진 모습이셨습니다. 사남매를 새벽 일찍 깨워 천자문을 외우게 하고, 영어를 가르치며 저희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하고요.”

봉사를 갈 때는 종종 중학생 아들과 미용사인 아내와 함께하기도 한다. 이날 봉사를 함께한 류승수군은 할아버지뻘인 참전용사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재밌어요”, 봉사하는 아버지를 향해 “멋있어요”라며 양 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들의 장난기 섞인 반응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그리고 저도 이만큼 먹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 손으로 어르신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보람이 없습니다. 모든 분들이 건강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회관을 나서면서 류 원장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준 참전용사들을 향해 허리 숙여 감사를 전하며, 참전용사 어르신과 쌓아온 인연이 앞으로도 10년, 20년으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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