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매년 설날이 오면 잊을 수 없는 술 항아리 사건이 생각난다.

푸른 꿈이 가득했던 20대 초반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7남매가 되는 대가족이었다. 농촌의 바쁜 나날 속에서도 매일 아침이면 5명의 동생들의 책가방과 옷차림이며 도시락 등을 챙겨주느라고 야단이었다.

어느 해 설날이었다. 설날이 오면 시골에서는 대가족의 이불 빨래를 비롯해 놋그릇을 닦고, 명절 음식 준비에 더욱 바빠진다. 떡국을 준비하려 방앗간도 오가고, 콩고물이나 팥시루떡이며 여러 가지 다과도 만들어야 했다.

보릿고개 가난한 시절, 명절에 집에서 만든 막걸리는 그 집안 아낙네들의 솜씨 자랑에 으뜸이었다. 막걸리는 쌀을 시루에 쪄서 돗자리에 술밥을 익힌 후 누룩을 섞어서 항아리에 담아 일주일이면 술이 된다.

하루는 뒷설거지를 하고 늦게 방에 들어가 술 항아리를 보았다. 술이 얼마나 익었나 확인하고 싶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막걸리가 달콤한 맛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양재기를 가져와 홀짝홀짝 떠다 마셨다. 마시다 보니 많이 먹고 말았다. 그 후는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밖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빨리 나오라고 야단이시다. 그 소리를 어렴풋이 듣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그때 남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아니, 웬 술 냄새가 이렇게 나지”하며 “엄마, 누나가 술 먹었나 봐요”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실직고하고, 아버지에게만은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때 어머니는 꿀물을 한 사발 가지고 와서 내게 마시라며 주셨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웬 술을 퍼마시고 이래. 동내에 소문이 퍼지면 시집은 다 갔다!”

어머니는 혀를 쯧쯧 차셨다. 그렇게 혼쭐이 난 다음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추억은 내가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기회가 됐다.

인생살이에 꿈을 먹고 살던 푸른 청춘이 벌써 노랗게 익었다. 이제는 술 항아리 사건을 추억하면 웃음이 나온다. 내 인생도 황혼길에서 잘 숙성된 막걸리처럼 달콤한 맛과 고소한 향기를 즐기며 살아가리라.

박수명 육군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하다가 순직한 전몰군경의 미망인이다. 전몰군경미망인회 서울지부 은평지회 회원으로 ‘흰국화꽃’ 동인지에 참여했으며, 현재 연세대 미래교육원 수필창작을 수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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