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용사와 성신여대 학생들이 참전유공자 초상화를 가운데 두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6·25참전용사와 성신여대 학생들이 참전유공자 초상화를 가운데 두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의 한 가운데 경기도 수원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성신여대 서양화과 학생들이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들고 행사장에 들어섰다. 마이 히어로즈(MY HEROS)라는 이름 아래 신구세대가 새로운 인연을 맺은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돼 전달식이 열리는 자리이다.

지난달 20일 전국에 큰 눈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개최된 마이 히어로즈 초상화 전달식은 지난해 초 경기남부보훈지청과 성신여대가 6·25참전유공자의 헌신을 알리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맺으며 시작됐다.

전달식에서 인터뷰 중인 박영근 교수
전달식에서 인터뷰 중인 박영근 교수

성신여대 서양화과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6·25참전용사의 초상화를 유화로 그려 전달한 이 프로젝트는 참전유공자와 젊은 세대가 참여하는 세대공감의 자리이기도 하다.

박영근 교수와 18명의 학생들은 학기 초 참전용사의 사진을 전달받아 그분들이 ‘영웅의 제복’을 입은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나갔다. 학기 내내 공들인 작품은 지난해 7월 수원 행궁길갤러리에서 ‘마이 히어로즈’ 전시회를 통해 공개돼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직접 얼굴을 뵙고 그림을 그렸다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도 최선을 다한 그림을 보고 참전용사 어르신께서 웃어주시니 정말 뿌듯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어요.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성신여대 서양화과 1년 변가은씨)

초상화 모델로 참여해 이날 작품을 전달 받은 최계성 참전용사는 “내 나이 18살에 6·25전쟁에 참전해 참혹한 일을 많이 겪었고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그래도 7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흐뭇하고, 손자보다 어린 학생들이 정성을 다해 그려준 초상화를 보물처럼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서양화과 1년 조연정씨는 “입시 준비를 하던 때보다 더 집중해서 그렸고 지난 전시회 때 처음 초상화의 모델이 된 참전용사 어르신께 인사를 드렸다”면서 “오늘 전달식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못 오셨다고 하셔서 걱정을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상화 속 참전용사들은 모두 정갈하게 ‘영웅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학생들이 참전용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깃들어서일까 부드럽게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단단함이, 옅은 미소에는 온화함마저 전해졌다. 18개의 커다란 캔버스 위로 참전용사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박영근 교수는 “아무래도 요즘 젊은 친구들이 국가유공자나 보훈의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학생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는 것은 물론, 재능기부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공헌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이 학생들의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이 줄 수 없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입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보람을 느끼게 됐지요. 앞으로도 예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입니다.”

박 교수와 학생들, 참전유공자 모두 전달식이 끝나고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학생들과 참전용사들은 다시 인사를 나누고 연신 ‘고맙다’는 말과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졌다. 그 사이 70년이라는 세월의 벽은 사라지고 대신 따뜻한 정으로 채워지는 듯 했다.

초상화를 품에 꼭 안고 가족들과 함께 눈길을 걸어가는 참전용사와 멀어지는 뒷모습에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또 다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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