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옷깃을 여민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오가는 겨울이다.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웃과 함께하는 삶,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만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열린책들)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집으로 ‘안나 까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 명작과 함께 작가가 평생에 걸쳐 쓴 대표적인 중·단편 소설 13편이 담겼다.

#“착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셔츠도 없이 벌거벗고 있을 리가 없어요. 만일 당신이 좋은 일이라고 했다면 저런 멋쟁이를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얘기해 봐요.” “그래그래, 내가 다 얘기해 준다니까. 길을 가는데 예배당 옆에 벌거벗은 이 사람이 꽁꽁 언 채로 앉아 있더라고. 여름도 아닌데 벌거벗고 있으니, 나 원 참. 하느님이 날 보내시지 않았다면 저 사람은 큰일 났을 거라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했겠소?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 사람을 일으켜 옷을 입히고 이리 데리고 온 거요. 진정해요. 죄를 짓는 거요, 마뜨료나.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고.” “마뜨료나, 당신 안에는 하느님이 없는 거요?” 이 말을 들은 마뜨료나는 다시 한 번 이방인을 쳐다보았고 그러자 갑자기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 그녀는 문가에서 벗어나 난로가 있는 구석으로 가 저녁을 차렸다. 식탁에 찻잔을 놓고 끄바스를 따른 다음 마지막 남은 빵 한 덩이를 올려놓았다. 칼과 숟가락도 놓았다. “좀 먹어요.”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모여 죽은 사람을 씻겨 누인 다음 관을 준비해 묻었죠. 모두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아이들만 남게 되었죠. 아이들을 어디로 보내겠어요? 그때 거기 여자들 중 갓난아이가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답니다. (중략) 처음에 난 성한 아이에게만 젖을 먹이고 발이 눌린 아이에게는 젖을 주지 않았어요. 살 거라고 기대를 안 한 거죠. 그러다가 생각했어요. 이 천사 같은 것이 무슨 죄람? 아이가 불쌍해지더군요. 그래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 자식 하나랑 이 아이들 둘, 그렇게 모두 셋을 내 젖으로 키웠답니다! (중략) 어떻게 내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요! 이 아이들은 내 보물이에요!

#제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저 스스로 일신의 안녕을 챙겨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과 그의 처의 마음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고 아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이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완전히 남인 여인의 마음에 사랑이 있고,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일찍이 저는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 것을 알았고, 그들이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기심으로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들은 사랑으로만 살아갑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푸른사상)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작품으로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대표 소설이다. 자린고비의 대명사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유령들을 만난 뒤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그들은 말끔하게 잘생긴 가족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옷을 잘 차려입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신은 신발은 방수도 되지 않았으며, 옷은 누추했다. (중략) 그렇지만 그들은 행복했고, 감사했고, 서로서로 즐거워했으며, 그렇게 보내는 저녁 시간에 만족했다. 그래서 희미하게 사라져 갈 때에도 식구들은 유령이 횃불로 뿌려 주는 밝은 불빛의 반짝임 속에서 더욱 행복해 보였다.

스크루지는 그 가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꼬맹이 팀에게서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만약에 이런 환영이 미래의 유령에 의해 바뀌지 않고 남아 있다면, 우리 종족은 누구도 저 아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유령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만약 저 아이가 죽는 다면, 저 아이한테도 낫고, 남아도는 인구도 줄어들게 되고, 더 낫지 않겠느냐.” 스크루지는 유령이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하는 걸 듣고는 죄책감과 슬픔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인간이라면, 만약 네가 목석이 아니라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네가 남아돈다는 게 뭔지, 어디서 남아도는지 알기 전에는 그런 사악한 말을 꺼내지 말거라. 네가 감히 어떤 이는 살고 어떤 이는 죽을지를 결정하려는 것이냐?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이 가난한 어린아이와 같은 수백 수천의 사람들보다 네 녀석이 훨씬 가치 없고 쓸모없다. 오, 이런! 나뭇잎을 기어다니는 벌레 같은 놈이 굶주려 죽어가는 가난한 형제들에게 너무 오래 산다는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걸 듣다니!”

#“저는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친절을 베풀고, 용서하고, 자비롭게 행동하는, 즐거운 때라고 말예요. 길고 긴 한 해 중에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꽁꽁 닫아걸었던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무덤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이지 다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때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삼촌, 크리스마스가 제 주머니에 금화나 은화 동전 하나 보태 준적은 없어도 제게 좋은 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빌지요!”

#스크루지는 말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자기가 말했던 것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베풀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꼬맹이 팀에게 스크루지는 대부가 되어 주었다. (중략) 스크루지의 변화를 보며 비웃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나 스크루지는 그런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비웃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 세상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이면 그게 뭐건 간에 비웃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 만큼 스크루지 자신이 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런 이들은 어차피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이 더 흉한 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이죽거리면서 비웃느라 눈가에 주름살 생기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스크루지 자신의 마음이 웃고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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