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아버지들은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산다. 손자가 귀여워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이가 상한다고 며느리가 싫어하니 군것질감 사주는 것도 겁난다.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춘향전 이야기를 해주면 손자가 먼저 “할아버지, 이몽룡이가 암행어사가 됐죠?”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손자한테 도리어 배우게 된다. 흐르는 세월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도 억울한데 손주들에 보여줄 카드가 없으니 거리감이 생겨 외롭고 가슴이 저민다.

손주들에게 군것질감도 안 통하고, 이야기도 안 통하니 결국 용돈 주는 것이 환심을 사는데 안성맞춤이다. 손주들 용돈을 주려고 노인종합복지관에 공공근로를 신청했더니 다행히 종로의 모 초등학교로 배당됐다.

아침 9시 출근, 12시 퇴근, 월 15일 근무하는 조건이지만 이 일마저 하늘의 별 따기다. 학교 정문에서 학교 보안관에게 신고한 후 식당으로 곧장 갔다. 대기실에서 비닐 가운으로 갈아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조장의 지시에 따라 먼저 청소를 했다. 식탁 바닥을 알콜 행주로 닦은 후 드디어 11시 반에 배식이 시작됐다. 어린이들이 식판을 들고 오면 밥 한 주걱에, 반찬 세 개와 국을 담아준다. 식사를 마친 어린이에게 식판을 받아 정리하고 다시 식탁과 바닥을 행주로 닦는다. 조장이 청소 구역을 배당하므로 그의 권한은 막강했다. 공공근로는 과거의 경력이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때로는 본의 아니게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조장이 한마디 했다. “얼굴은 반반한데 여기서 일하는 것 보니 고등학교나 나왔당가.” “예, 중학교도 못 나왔습니더.”

다음에는 관악구의 한 매장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 도토리묵을 팔았다. 두부모처럼 자른 묵을 개당 1,000원에 팔았는데 어느 날 조장이 숙제를 냈다. 묵을 만들 때 실수로 볼트 한 개가 섞였는데 묵을 망가뜨리지 않고, 볼트를 찾아내라는 숙제였다.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저울에 달아 보기로 했다. 저울로 묵을 일일이 달았더니 묵 1개가 12그램이 더 무거웠으므로 볼트를 찾았다. 보란 듯이 숙제를 풀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시험을 당한 것만 같았다.

쥐꼬리 만한 돈을 벌기 위해 조장으로부터 도토리 묵으로 시험도 당하고 갑질도 당했으니, “손주야, 네게 준 용돈의 사연을 알겠느냐.” 이 용돈엔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단다.

고재덕 수필가 부친이 6·25전쟁 기간 중 공비토벌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한 전몰군경의 자녀로 육군군수기지 사령부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 2015년 수필춘추로 등단한 후 수필을 벗 삼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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