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무섭다. 소설책을 읽다 말고 마지막 페이지를 본다. 어릴 적의 책 읽기 버릇이다. 고난과 슬픔에 빠진 주인공의 앞날이 궁금해서 미리 뒷장을 보곤 했다. 콩쥐가 계모의 핍박에서 어떻게 견디는지, 신데렐라가 행복해지는지, 마르코가 엄마를 만나는지, 해피엔드로 끝나는 결말을 보고 나면 그때부터 편안하게 책이 읽혔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영화를 본다. 요즘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리모컨이 내 차지가 아니라서 영화관으로 간다. 영화를 보는 건 혼자여도 괜찮다. 어떤 쓸쓸함에 가슴이 뻐근하거나 슬픔이 위험신호를 보낼 때, 캄캄한 공간에 있다 나오면 좀 낫다.

최근에 본 영화는 ‘아바타, 물의 길’이다. 빼어난 영상미와 펼쳐진 상상의 세계는 놀라움과 감동 그 이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세 시간 동안 거대하거나 아주 작은 물속의 온갖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눈 호강을 제대로 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바타의 잔상이 따라온다. ‘아버지는 지키는 자,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다.’ 내용과 배경과 기술이 아무리 고차원적 미래 설정이라 해도 본질적 얘기는 하나다. 어떤 부족이거나 족속이거나 아버지란 가족을 지키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런 귀한 존재의 울타리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영화를 보며 내 안의 아이에게 속삭인다. 아빠랑 함께 바닷속을 누비는 저게 너야. 네 과거의 모습이란다. 너도 저 아이들처럼 신비한 세상에 있었지.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란다. 나는 어미 고래가 되어 물을 뿜으며 아이를 데리고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착각에 빠진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내 책의 결말을 미리 읽고 싶다. 아니 쓰고 싶다.

전쟁에 아버지를 잃고 외로웠던 아이. 아빠 목에 무등 탄 또래를 부럽게 바라봤던 어린 시절. 결혼식 땐 큰아버지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갔다. 처음 잡아본 남자의 두툼한 손, 아버지 손은 이런 거구나 가슴이 찡했다. 고민 많던 청소년 시절 저런 따뜻한 손이 내 등을 한 번만 쓸어 주었더라면 그처럼 외롭지 않았을 것을…. 사는 동안 시련과 고난의 이력 없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마는 나에게 시련은 담금질이 되고 고난은 버티는 용기와 힘이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앞서간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것. 다만 그 시간이 길지 않고 시난고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무대의 자막은 부디 해피엔딩이기를….

송연희 경북 김천 출신으로 6·25전쟁 전사자의 유가족이다. 1990년 문학예술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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