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민 엘 바샤, ‘아인 엘 마레시에서의 추억’, 2012, ⓒ예술 재단&아민 엘 바샤 재단.
아민 엘 바샤, ‘아인 엘 마레시에서의 추억’, 2012, ⓒ예술 재단&아민 엘 바샤 재단.

20세기 한국, 레바논, 시리아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회화 전시 ‘일상첨화’가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6관에서 열린다.

오는 12월 3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20세기 역사·경제·사회·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제국주의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서양의 다양한 화풍을 접한 각국의 예술가들이 일궈낸 독자적 화풍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국의 김환기·오지호·임직순·천경자 작가와 서아시아 레바논의 아민 엘 바샤, 시리아의 파테 무다레스 작가의 작품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비슷한 시대적 상황 속에 있었던, 동시에 시대와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놓음으로써 그들 작품 속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김환기, ‘귀로’, 1950년대,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귀로’, 1950년대,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한국의 예술가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통해 유럽의 미술 경향을 접했고, 레바논과 시리아의 예술가들은 프랑스의 위임 통치 아래 보다 직접적으로 유럽의 미술 경향을 접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들의 경험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확인하고 비교하는 공간이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한국적 정취를 드러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김환기의 작품이 먼저 눈에 띈다. 김환기의 ‘귀로’는 1950년대에 그려졌다. 한국의 전통적인 그림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맑은 푸른색의 색채를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전통적인 여인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은 작가가 늘 가졌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엿보이는 동시에 한국작가로서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한국 대표 작가로 불리는 천경자. 특유의 여인의 한과 꿈, 고독이라는 주제를 환상적인 색채로 구사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그의 작품 중에서도 손 꼽히는 ‘그라나다의 도서관장’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스페인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열대 식물과 앵무새와 화려한 무늬의 치마를 입은 도서관장의 모습이 하나의 강렬함을 자아낸다.

전남 화순 출생으로, 주로 광주에서 활동한 오지호 작가의 ‘자화상’은 그만의 또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유족의 소장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작고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연필 스케치로 담담하게 남겼다. 한국의 빛과 색채를 가장 잘 구현한 화가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 ‘무등산이 보이는 구월풍경’은 작게 펼쳐지는 들과 산과 흐린 듯한 하늘의 모습에서 특유의 한국적 풍경이 잘 드러난다.

광주에서 활동하며 자연주의 성향의 호남 서양화풍에 영향을 미쳤던 임직순 작가의 작품 ‘가을과 연인’은 배경의 색채부터 여인이 입은 옷의 색채와 구도까지 쓸쓸한 가을의 감성을 전달한다.

파테 무다레스, ‘사피타(어머니)’, 1988, ⓒ재)아타시 문화 예술 재단.
파테 무다레스, ‘사피타(어머니)’, 1988, ⓒ재)아타시 문화 예술 재단.

레바논을 대표하는 작가 아민 엘 바샤의 작품 ‘아미 므라야치 비치에서’는 레바논 특유의 음악적 리듬감과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을 연상케하는 간결한 선으로 된 표현과 율동감, 특유의 풍부한 색채감과 과감한 구도가 돋보인다. 각각의 유닛으로 화면을 분할해 꽃과 태양, 대지 등을 다룬 ‘사계’ 작품도 눈길을 끈다.

또한 시리아를 대표하는 20세기 작가 파테 무다레스는 유럽에서 공부하며 초현실주의 시도를 거쳐 시리아의 현실풍경을 담아냈다. 시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의 풍광을 담은 작품인 ‘사피타’는 작가가 어린 시절 광활한 고원, 평야, 사막을 보며 자랐던 시골에서의 시각적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먼지로 인해 가려진 풍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과 나무가 그의 작품의 주된 소재다. 황색의 모래사막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존재와 바람을 품은 대지가 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기후, 풍토, 문화 등에서 서로 고유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동·서아시아의 그림을 통해 관람객들이 여행을 떠나듯이 관람할 수 있는 전시 ‘일상첨화’는 오는 12월 3일까지 계속된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문의 1899-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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