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 어린 음식이 있다. 그걸 만들 때나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음식은 기호식품이 된다. 내게 그런 음식을 말하라면 배추전이다.

가을철 김장 배추가 시장에 나오면 전을 부칠 배추를 고른다. 배춧잎이 너무 두껍지 않고 속이 차지 않은 것으로, 흔한 채소에 손쉽게 만드는 음식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어릴 때는 그 맛을 몰랐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걸 맛있다며 드시는 엄마가 이상해 보였다. 엄마 말을 빌리면 뜨거워도 식어도 맛있단다. 배추전은 나이 들어가며 그 맛을 알게 되는 게 아닐까. 손으로 죽죽 찢어서 양념장에 콕 찍어 옆에 있는 누구의 입에라도 넣어주고 싶은 것. 배추 특유의 식감에 젓가락이 자꾸 간다.

“뭘 그렇게 많이 해?” 밖에서 들어온 그가 배추전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순간 손이 멈칫하고 머릿속으로 짧게 전류가 흐른다. 순간순간 엄마가 없다는 걸 깜빡했다가 아차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식기 전에 드시라고 요양병원을 향해 종종걸음을 했던 때가 어제 일인 것만 같다. 배추전을 많은 듯 가지고 가야 같은 방의 할머니들이 다 드실 수가 있었다. 누군가 면회를 오면 무얼 가지고 오는가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어르신들. 입맛이란 게 나이 따라 비슷한지 배추전이라면 모두 반색했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부담 없이 만들 수 있고 소화는 물론 배변도 잘되니 간호사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가끔은 함께 먹으며 좋아한다. 모두들 그때만은 그곳이 요양병원이란 사실을 잊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시장에 가면 감히 한 마리 이삼만 원 하는 갈치는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지금은 오만 원에 두어 마리 겁 없이 산다. 아프면 까짓 병원에 갖다 줄 돈. 치아가 성할 때 먹고 말지.

그런데 나는 왜 이리 울고 싶은가. 당신 생전에, 오리 백숙에 ‘전복 넣고 문어 한 마리 풍덩 넣어’ 끓여드리지 못했을까. 오줄 없이 눈물 찔끔 흘리며 후회한들 뭔 소용인가.

오늘은 배추전이 먹고 싶다. 가슴이 당신을 생각하는 게다. 줄기 두툼한 배추를 도마에 엎어놓고 칼자루로 톡톡 두드린다. 그렇게 해야 줄기가 들뜨지 않는다던 당신 말씀이 생각난다.

식탁 위에 배추전 한 접시와 물 한 대접을 떠 놓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고 엄마가 혹 오실지도 몰라서. 하마 당신이려나.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간다.

송연희 경북 김천 출신으로 6·25전쟁 전사자의 유가족. 1995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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