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첫 손자 태명이다.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 된다. 밭두둑 속 고구마만큼 쑥쑥 잘 자란다. 연년생인 동생은 친구 같다. 거의 그렇듯이 동생이 형보다 더 크다. 큰 녀석은 과묵하고 작은 놈은 활달하다. 고구마 가족이 집에 오면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저출산 문제로 나라는 골머리를 앓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막내 시집보내면서 딸이 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다. 아들은 터울을 한참 건너 아이를 갖더니 손녀가 태어났다. 2남 1녀니 애국자다.

요즘은 다둥이 가족이라면 한몫 먹고 들어간다. 삼남매를 키우면서 야만인 소릴 들었던 나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큰 고구마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이 뭔지도 모를 열 살 때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네 권째 쓰는 중이란다. 보통 고만할 때는 과학자나 군인, 소방관, 프로게이머 같은 걸 꿈꿀 텐데 뜻밖이다. 녀석이 언제쯤 제가 쓴 글을 할미한테 보여줄지 모르지만 손자의 소설을 읽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은 고구마는 형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다. 운동이라면 다 관심을 보인다. 할아버지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모양이다. 무에타이, 수영, 골프, 거기에다 맛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다.

아들이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직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깜짝 놀라서 이유를 들어보니 복지가 나은 곳을 찾은 것일 뿐이란다. 거느릴 식구가 많아지니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진 결단이리라.

요즘은 자식을 결혼시켜도 끝이 아니라는 말들을 한다. 생활비 대주는 부모들이 많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아이들 교육비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자녀 갖기를 포기한다는 소릴 들으면 고구마 먹다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다.

요즘 남편은 며칠만 손녀딸을 못 봐도 통화를 하고싶어 한다. 아들은 삼남매가 나란히 학교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집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동영상을 전송해준다. 큰 고구마는 소설이라도 쓰는 듯 늘 컴퓨터 앞에 있고, 작은 고구마는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막둥이 손녀는 카메라 앞에서 온갖 표정을 다 지으며 재롱을 떤다.

길을 가다 ‘고구마’가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주저 없이 산다. 가족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늘 가슴 언저리에 함께 있다. 고구마 가족을 생각하면 큼직한 고구마 먹은 듯 배가 든든하다.

송연희 경북 김천 출신으로 6·25전쟁 전사자의 유가족. 1995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