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유산회 회원들이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정화활동을 하고 있다. 유산회는 매달 두 차례 현충원 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보라빛 무궁화가 곱게 피어난 한여름의 국립대전현충원.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묘역정화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지난 2011년부터 국립대전현충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묘역정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대전 유산회 이범진 회장(73)을 만났다.

“봉사는 시간이 많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죠. 정화활동으로 깨끗해진 묘역을 바라보면 여기 잠든 전우들도 평안히 쉬는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범진 회장은 청룡부대 소속으로 파병돼 최전선에서 싸웠던 월남전 참전용사. 이 회장은 ‘동기생 20명이 같은 배를 타고 월남에 갔는데 귀국할 때는 전사와 부상으로 8명만이 함께 돌아왔다’고 회고하며, 이후 함께 싸운 전우의 곁을 지키고 싶어 현충원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

이날 이범진 회장과 같이 봉사활동을 펼친 이들은 비영리 자원봉사단체인 유산회 회원들. 지난 2006년 이 회장을 중심으로 조직된 유산회는 매주 수요일 현충원 봉사와 대전 인근 산 등산로 정화 활동을 번갈아 하고 있다. 묘역정화 자원봉사는 이번이 벌써 115회차. 그간 꾸준하고 성실하게 봉사한 것을 인정받아 지자체와 각종 기관에서 주는 봉사단체상을 여러 번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이 회장이 모범 국가보훈대상자로 국민포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가 지난 1982년부터 해병전우회, 대전광역시 자원봉사연합회 등 여러 자원봉사단체와 함께 교통정리, 자연보호, 시각장애인 체험등반, 국제행사 지원, 코로나19 재난 대응, 국내외 재난지역 지원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4년 8월부터 2023년 2월까지 1365자원봉사포털 시스템에 등록된 이 회장의 누적 봉사활동 시간은 자그마치 1만 8,803시간 50분, 회차로는 5,170회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지금까지 헌혈에도 345회나 참여해 대한적십자사가 300회 이상 헌혈자에게 수여하는 최고명예대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2년 무렵이었습니다. 하루는 회사에 헌혈차가 왔는데 불현듯 미처 수혈을 받지 못해 유명을 달리한 전우가 생각나더군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헌혈을 했는데 마음이 무척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 하나 살린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꾸준히 헌혈과 자원봉사를 통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탠 이 회장은 직장을 퇴직하고 봉사활동의 폭을 더욱 넓히기 적십자사의 응급처치법 강사 자격증, 재난심리적지지프로그램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스쿠버다이버 자격증을 취득해 수중 정화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런 이 회장에게 시민안전을 지켜낸 특별히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대전 유성구 온천2동 자율방재단장으로 봉사할 때였습니다. 새벽에 순찰을 도는데 구암역 부근의 인도가 붕괴 직전임을 발견했습니다. 곧 출근 시간이라 자칫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급히 구암역 역무원에게 연락을 취해 함께 그 부근을 봉쇄하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죠. 덕분에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후 긴급 보수공사를 통해 사고를 막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처음부터 아내와 자녀들이 봉사활동을 이해하고 지원해줬기에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며 온 마음으로 함께한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한마음 한뜻으로 봉사에 동참하는 유산회 회원들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 회장은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전장을 지키듯’ 봉사현장을 떠나지 않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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