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을 보다’, 혹은 ‘바라보면서 느끼고 바란다’라는 말이다. 온누리에 새 생명이 움트고 생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 희망을 품고 나아가자는 미래지향적인 메시지가 암시돼 있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이렇게 뭇 생명들이 소생하는 봄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로운지 경외감으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봄은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품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봄을 찬미하고 찬양하고, 때로는 오지 않는 봄을 안타깝게 기다리며 절망하고 탄식하는 글과 노래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나라를 빼앗긴 시대의 아픔을 절규하며 저항했던 이상화의 시도 있다. 이처럼 봄은 희망과 절망, 환희와 비탄 등 긍정과 부정의 정서가 대립하는 형이상학적인 내밀한 뜻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은 기쁨보다는 슬픔, 긍정보다는 부정적 요소에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상화 시인이 몸소 겪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환경과 사회의 우울한 단면들이 이 시에 겹쳐지며 온갖 상념들이 뇌리에서 서성인다.

그 상념들에는 행여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있고, 봄을 맞을 준비가 부족하다는 자책과 자각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겨레의 민족 얼을 지켜온 위대한 민족이 아닌가. 그래서 내심으로 우리의 봄은 있다고, 기필코 온다고 자위본능으로 외쳐본다.

그동안 우리는 해묵은 이념논쟁, 객관성과 합리성이 무시되고 배제된 진영논리에 편승해 일방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투쟁적인 집단이기주의에 지배돼 국가와 사회발전의 순기능이 상당부분 실종된 채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소유의 격차가 커지면서 유발된 상대적 박탈감, 계층 간의 갈등과 위화감 등 사회 문제가 산적해 있다. 또한, 진정한 소통과 화합, 희생과 헌신 없는 과거의 투쟁방식들이 아직도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런 극단의 사회적 행태에 가로막혀 대해로 나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좌초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마치 극심한 가뭄으로 거북등처럼 갈라진 황량한 농경지를 바라보는 농심(農心)과도 같은 그런 안쓰러움이 가슴을 찌른다.

우리가 갈망하는 새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분출되는 굉음 같은 불협화음과 갈등의 파열음들을 그만 들었으면, 잦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제 우리를 옥죄고 있는 이런 과거의 사슬들을 풀고 새봄의 광활한 대지에서 움트는 새 생명의 싹을 눈이 시리도록 그렇게 바라보면서 새봄을 마중하고 싶다.

지축을 울리는 장엄한 봄의 교향악과 함께 새봄의 감동과 환희의 희망을 만끽하고 싶다.

 

김영식(월남참전유공자, 참전용사의 애환을 담은 장편소설 ‘초조한 마중’이 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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