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으신 어르신이 지난 1월 신문의 칼럼을 가지고 오셨다. 겨울철 양생은 숙면과 보온이라고 했던 칼럼이다. 중요한 내용마다 빨간 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이렇게 다 해봤는데 잠을 못자니 어떻게 된거냐는 거다.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백화점에서 잠이 잘 온다는 고가의 침대를 파는 매장이 신기해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손님이 잠만 잘 잘 수 있다면야 재산을 팔아서라도 사겠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구입을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한의학에서 불면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류해 치료에 접근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충분한 시간을 자는데도 피로감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신체의 항상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마다 그 균형이 무너진 곳이 어디인지 찾는 것이 진단과 치료의 관건이다.

그 중 대체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다섯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1. 사결불수(思結不睡)형

생각을 지나치게 골똘하게 해 잠을 못 자는 경우다.

별일 아닌 일에도 생각이 끊이지 않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며 꿈을 많이 꾸고 소화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성격에 속을 끙끙 앓는 타입이 많다. 이럴 경우는 소화기능을 담당하는 비기를 증진시키는 약으로 치료한다.

2. 영혈부족(營血不足)형

체력소모를 많이 한 후 생기는 불면증이다.

큰 수술이나 출산 후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는 잘못된 다이어트로 영혈을 손상시킨 경우도 해당된다. 손발이 차고 기운이 없고, 오래되면 배도 차고, 대변이 묽어지는 경우가 많다.

3. 음허내열(陰虛內熱)형

오랜 동안 과로로 기혈을 손상시키거나 진음이 부족한 노인에게 생길 수 있다.

허열이 상승해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물을 마셔도 입안이 마르고 변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보음해 허열을 내리는 약을 사용한다.

4. 심담허겁(心膽虛怯)형

원래 담력이 약한 사람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잠을 못 자는 경우다.

실질적인 문제는 해결돼도 증상은 남아 괴로운 경우가 있다.

5. 담연울결(痰涎鬱結)형

스트레스, 억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돼 기가 불통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담이 생성돼 소화 장애, 두통, 여기저기 반복되는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예민한 성격이나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타입이 많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외에 다른 신체질환의 결과로 생기는 불면도 있다.

오죽하면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을까. 불면이 오래 지속되면 또 다른 신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적절한 치료를 미루지 말자.

■한을주(중앙보훈병원 한의학박사, woogic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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