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선(오른쪽)씨와 자원봉사자들. 중앙보훈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3인 1조로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김화선(오른쪽)씨와 자원봉사자들. 중앙보훈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3인 1조로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성큼 다가온 여름을 맞아 거리의 가로수마다 초록의 새 잎들을 무성하게 뽐낸다. 초여름을 맞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의 호스피스병동은 예의 차분한 모습이다. 병동 조금 외진 곳에 자리잡은 목욕실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나온다. 환우들에게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김화선 자원봉사자(74)를 만났다.

“목욕봉사를 하는 화요일은 일주일 중 제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입니다. 의사는 의사의 일을, 간호사는 간호사의 일을, 자원봉사자들은 그 사이 어느 빈틈 환우의 마음을 보듬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가 있는 날이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전철을 타고 중앙보훈병원으로 향한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오늘 목욕할 분의 몸 상태와 주의할 점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여러 명이 조심스럽게 환우를 목욕실로 옮기면 자원봉사자들이 3인 1조로 목욕봉사를 시작한다. 연달아 2~3명을 씻겨드리고 나면 3시간, 어느덧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요즘 중앙보훈병원 호스피스병동에는 월남전 참전자, 고엽제후유의증 환우들이 특별히 많은 듯 합니다. 저도 월남전 참전유공자로 통하는 부분이 많아 같이 있으면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대화가 이어지죠. 환우들이 목욕하는 그 잠깐만이라도 아픔을 잊고 웃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요.”

김화선 씨는 1972년 월남전에 참전했고 여전히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함께 지켰던 전우들을 잊지 않고 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군 동기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매년 현충일이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먼저 간 전우들을 추모한다. 중앙보훈병원에서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며 전우들을 만나고 있는 것도 전우들을 잊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약속의 실천인 셈이다.

“기왕에 봉사를 한다면 전우들을 섬기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 2019년부터 중앙보훈병원을 찾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고, 전장에서 무사 생환한 경험도 있어 퇴직하면 남은 인생은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는 18년간 군 복무 끝에 영관장교로 예편한 뒤, 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하고 2009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1년을 앞두고 장애인과 환우를 돌보기 위한 교육을 이수하며 본격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준비했다. 2009년부터 지적장애인 돕기를 시작으로, 이어 시각장애인을 돌보는 봉사를 했고, 2013년부터 호스피스 환우 목욕봉사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돌보던 환우가 돌아가셨을 때는 슬픔으로 힘들었지만 이제는 죽음을 모든 인간이 거치는 한 과정으로서 받아들입니다. 큰 고통 속에도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큰 보람과 위안을 받습니다.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15년 가까이 이어진 그의 봉사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봉사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은 물론 기회가 되면 동참하기도 한다. 그의 권유로 새롭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인들도 많다.

“봉사란 다 갖추고 넉넉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마음과 여유를 이웃과 나누며 함께하는 것이 봉사라 생각합니다. 저도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제 삶의 중심에 봉사활동을 두고, 쉬지 않고 계속할 겁니다.”

그는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전우들을 섬기기 위해 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 봉사를 하지 않는 날에는 산책과 등산으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오늘도 밝게 환우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의 따스한 손길과 미소가 호스피스병동의 햇살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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