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오늘.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치매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마저 곤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아마도 참된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본인일 것이다. 조금씩 잊으면서도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삶.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여정을 함께한다.

# 깜박깜박해도 괜찮아

항상 일하는 바쁜 딸로 부모님에게 무심하게 살아왔던 저자가 경도인지장애를 앓게 된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바람직한 노년에 관해 공부하며 쓴 글이다. (장유경 / 딜레르)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들, 대부분의 사소한 일상과 몇 번의 감동스러운 순간들을 되도록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지금까지 2년을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포함해서 몇 십 년 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모르겠다. “엄마를 책임질 수 있어?” “나도 몰라. 그 뒤엔 어떻게 될지. 근데 지금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엄마랑 얘기가 통할 때 엄마랑 즐겁게 살고 싶어. 나중을 걱정하면서 지금 엄마랑 좋은 시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내 대답이었고 내 진심이었다. 내가 엄마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내가 대단한 효녀도 아니고 치매 노인을 모시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그런 자식들처럼 모실 자신도 없었다. 어찌 보면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동생들이 선뜻 동의해주지 않아서 섭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너무 답답하고 우울해서 터질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셀프 휴가’다. 주로 서너 달에 한 번씩은 남편과 둘이서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합가한 해 겨울에는 남편과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물론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 자리를 메꾸어 줄 사람들을 주선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다. 또 나의 책임을 주위에 미룬다는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도 나의 휴가는 꼭 필요하다. 여가활동은 돌봄의 우울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대처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러한 여가활동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죄책감이다. 일반적으로 죄책감이 클수록 여가활동이 줄어들게 되고 우울감이 더 커진다.

△엄마가 웃으시니 감사하다. 나라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만 보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콕콕 찌른다. 엄마가 얼마나 유쾌하고 명랑한 분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러던 엄마가 요즘은 달라지셨다.

봄이 되어 그런지 산책을 나가면 보는 꽃마다 멈추어 “예쁘다!”, “최선을 다해서 피느라고 애썼다”고 칭찬하고 사진 찍어두라고 하신다. 또 요양사 쌤이 준비해온 유머를 읽으며 내 방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하하 호호 눈물까지 흘리며 웃으신다. 엄마의 웃음소리와 환한 얼굴이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적다 보니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고, 잘 웃고, 잘 들어주고, 무엇보다 옆에 계셔 주시는 것, 이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굉장한 기적이었다. ‘일상의 기적’ 시 속에서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맴돈다. 오늘도 이 사소한 일상의 기적에 감사한다.

#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30년간 다큐멘터리 방송을 제작해온 저자가 치매를 앓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간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고, 이어 같은 제목의 책을 썼다. 쾌활하고 유머러스했던 엄마에 대한 추억과 간병하는 과정의 아픔까지 솔직하게 담았다.

(노부토모 나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시공사)

△“내가 이상해져서 안 찍니?” 2013년 새해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치매가 의심된 이후로 엄마를 찍지 않았다니, 참 무례했구나. 그건 지금의 엄마를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엄마가 촬영하기 창피한 사람이 된 게 아닌데, 엄마는 엄마일 뿐인데.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려면 지금껏 해온 대로, 평소처럼 하는 것이 제일일 텐데. 그래서 2013년 나는 다시 부모를 찍기 시작했다.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해도 지적하거나 탓하지 않고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며, 때로는 모르는 척도 하면서 가능한 한 평소처럼 마주하리라 결심했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죽어야지”를 입버릇처럼 되뇌기 시작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거나 자신의 잘못을 타박한다고 느끼면 곧바로 “죽어야지”하는 것이다. 예전의 쾌활하고 배려심 깊은 엄마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이다. 처음에는 그 소리에 가슴이 철렁해 그때마다 슬퍼졌는데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지라 나도 이제는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이때도 엄마는 “죽어야지”라고 말하자마자, “너, 여기에 실밥 묻었다”하면서 내 옷에 묻은 실밥을 떼 주었으니.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딸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는 엄마의 역할과 자신이 이 집에 더 이상 도움이 안 되니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절망이 혼연일체가 되어 동거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 올 때는 엄마가 늘 팬티 기저귀를 입고 있잖아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야 네 엄마도 네게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게지. 내가 ‘나오코가 내려오는데 애 귀찮게 하지 말고 팬티 기저귀 입으시게나’하면 그때만 말을 듣는 게다.”

그 순간 여러 감정이 덮쳐와 가슴이 먹먹했다. 사실은 팬티 기저귀 따위 입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자존심. 하지만 옷에 실례를 해서 딸을 괴롭히는 건 더더욱 싫은 부모의 마음.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라면 조금 실례를 하고 응석을 부려도 괜찮다는 신뢰감. 그리고 그에 응해 바닥을 닦고 엄마의 속옷을 빨아주는 아버지의 애정. 어떤 상황이건 모두 받아들이는 아버지와 엄마의 유대. 딸인 나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강하고 깊은 유대다.

△기억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병이니까. 그래도 엄마가 의욕과 자신감까지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살아갈 기력을 잃고 하루 종일 멍하니 있거나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가장 힘들다.

(중략) 하지만 이 상황은 바꿀 수 없다.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치매를 인정한 다음 즐거움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 책의 머리글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이 소중한 사람의 치매를 받아들이기 위한 제일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