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솜씨지만 가끔 붓글씨를 쓴다. 먹에서 은은히 들리는 묵향, 스르르 한지에 번지는 묵흔, 그런 것들이 글쓰기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서도에는 정심정필(正心正筆)이 중요하다. 번다한 생각을 버리고 곧은 자세 바른 마음으로 쓸 때 좋은 글씨가 나온다. 서예를 서도(書道)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오늘은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을 써보았다. 날 일자를 쓸 때는 둥글게 원을 그리고 가운데 점하나를 찍는다. 그러면서 세상사가 동그라미처럼 처음과 끝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해가 뜨는 순간은 밤이 끝나는 순간인 동시에 낮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시계는 밤 열두시가 다음날 새벽 영시다. 부산은 경부선의 종착역이지만 상행선의 시발이고 하행의 시발점인 서울은 동시에 상행의 종착역이다.

어떤 일의 끝이 곧 종말이요 만사휴의라는 단선적 사고는 곤란하다. 끝났다 싶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세상사다. 어떤 경우에도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나의 인생에 포기란 없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나 쓰는 말이지 인생에는 포기란 것이 없다는 불퇴전의 정신이 필요하다.

지족가락(知足可樂)이라 했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허허한 마음이 될 줄 모르면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가 되기 쉽다. 그러나 욕망을 버리고 체념하는 것과 일을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포기하는 것은 허약한 정신력의 소산이다. 서양속담에도 “Better late than never”이라 했다. ‘늦게 해도 전혀 안 해보고 포기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자살’이란 말을 열 번 되풀이하면 ‘살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 비록 캄캄한 바닥을 헤맬지라도 내일은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적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는 둥글다. 붓으로 날 일자를 쓰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둥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늘이 만든 것치고 모진 것은 없다. 저 누에 궁둥이, 빗방울, 눈물, 침 같은 것이라도 둥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원형(原形)에 가까운 것은 원형(圓形)에 가깝다.

선한 것, 아름다운 것 치고 모난 건 잘 없다. 탱자나무에는 뾰족한 가시가 있어도 열매는 동그랗다. 건축도 서양건물의 날카로운 직선보다는 우리네 기와집의 버선코같이 부드러운 곡선을 나는 사랑한다.

아침에 걷기운동 하러 학교운동장에 가보면 삶도 동그라미를 그리는 원형동작이란 걸 깨닫는다. 연못의 소금쟁이처럼 사람들은 자꾸만 동심원을 그린다.

산다는 건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그건 둥글게 사는데 있는 건지도 모른다. 원효대사의 말처럼 이왕이면 원융회통(圓融會通), 모나지 않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세상이 시끄럽다.

우리 옛사람들이 좋아했던 달 항아리처럼 그렇게 둥글게 살 일이다.

배철웅 4·19혁명유공자로 현재 4·19혁명공로자회 이사를 맡고 있다. 국제신문 논설위원을 11년간 역임하고, 동명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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