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피는 들꽃은 그 나라 사람을 닮는다고 한다. 질경이, 쑥부쟁이, 강아지풀, 안개꽃, 쥐오줌풀, 며느리배꼽, 제비꽃…. 매화, 모란, 작약, 난초 같은 고상한 꽃이 양반꽃이요 귀족꽃이라면 우리 들꽃들풀은 초야에 묻혀 사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과 같은 존재들이다.

바우, 만덕이, 실겅이, 싹불이… 그런 게 우리 옛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지체 높은 양반님네들은 성명삼자(姓名三字)도 고상하고 당당했지만 일반백성들의 이름은 흙냄새와 거름냄새,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것들이었다. ‘입실댁’이니 ‘밤골댁’으로 불리던 우리 아낙네들의 이름도 그랬고,

우리 야생 꽃들은 모양부터 수더분하고 정답다. 가을날 집 뒤의 빈터나 언덕과 들판 등 어디서나 지천으로 피는 쑥부쟁이는 화려하고 간드러진 서양미인이 아니라 검은 무명 통치마 입고 물동이 이고 가는 우리 고향마을의 큰 애기를 연상케 한다.

쑥부쟁이는 국화꽃을 닮았지만 국화보다 월등 작고 초라하다. 하기야 국화도 나는 좋아하지만 그건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좋아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우리 야생초는 죄다 순박하게 생겼다. 순진하면서도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가졌다. 아무리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봄이면 얼었단 땅을 비집고 나와 눈이 부시도록 푸르게 대지를 새 생명으로 뒤덮는다.

수많은 우리 들풀들꽃 가운데서 내가 특히 사랑하는 것은 닭장풀이다. 닭장 아래에서 자란다 해서 이름이 닭장풀이라고 한다는데 크기가 하도 작아서 애처롭게 보일 정도다. 얼마나 작은고 하면 너무 작아서 눈앞에 바짝 들이대고 봐야 제대로 보일 정도다.

왜 하필 그런 초라한 들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작고 가련해서 좋아한다고나 할까. 두터운 플라스틱 조화 같은 검붉은색 동백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닭장풀은 보면 볼수록 그 여린 꽃의 정겹고 귀여운 자태에 반하게 된다. 그 선연한 자주 빛 꽃 판과 이파리의 생김새라니….

그리고 민들레도 내가 좋아하는 들꽃 “베스트10”중의 하나이다.

언제던가, 무심코 길을 가다가 도로의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민들레를 발견하고 감동했던 적이 있다. 민들레는 아무리 짓밟히고 꺾어져도 다시 되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온갖 풍파를 헤치고 반만년을 살아온 우리 겨레의 모습을 닮았다.

우리 옛사람들은 들풀처럼 이름도 없이 살다 갔지만 언제나 그런 그리움과 정감을 담고 살았던 것이다. 시는 반드시 이름난 시인의 작품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명씨의 시도 못지않게 절절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꽃도 이름난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들꽃도 못지않게 곱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철웅 4·19혁명유공자로 현재 4·19혁명공로자회 이사를 맡고 있다. 국제신문 논설위원을 11년간 역임하고, 동명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