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년 전 남편의 콧잔등 중앙에 아주 작은 검은 점이 보였다. 이것이 몇 년 사이에 1밀리미터가 넘게 자랐다. 코 중앙이라 눈에 잘 띄어 피부과에 점을 빼러 갔다.

뜻밖에도 암일 가능성이 20% 정도 있으니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 하였단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안했다. 평소 온화했던 그의 표정에 그늘이 어린다. 팔십 평생 건강엔 큰 걱정 없이 살았는데, 별안간 암일 지도 모른다는 소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암’에 대한 선입견이 불안감을 더 키우는 것 같다.

“설령 ‘암’이라 할지라도 우리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여요”하며 그를 에둘러 위로하면서도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려가 현실로, ‘기저 피부암’이란 진단이다. 목 부근 피부를 이식해야 한단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여요”라던 말은 빈말이었나 보다. 원래 침착하고 내공이 쌓인 사람이라 겉으론 태연한 척하나, 그 마음이 오죽할까. 애써 담담한 척하는 그가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특히 코 주변의 피부암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수술하는 날, 수술실 앞에서 초조히 기다리는데, 피부이식 없이 나오는 그를 본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이 울컥했다. 며칠 동안 버거웠던 체증이 일순간 사라진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 한다. 인생살이 굽이굽이 마다 어려움은 항상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수술 후 상처 치료는 동네 병원에서 받았다.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기존에 복용하고 있던 약이 있음에도 새로운 항생제를 또 처방해 주었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며 새로운 불안감이 몰려온다. 아마도 넓고 깊게 파인 상처가 잘 치료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걱정거리가 또 생긴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 않다. 밖으로 나가 무념무상으로 산책길을 걷고 또 걷는다. 늦가을 메마른 낙엽들이 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나뒹구는 모습이 어지럽고 심란한 내 마음과 흡사했다. 나이 탓인지 조그만 걱정거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마음이 아리다. 그냥 아프다. 그의 상처가 아무는 날, 아리고 쓰린 내 마음도 함께 치유되리라.

생각해 보면 언제부턴가 내 엄지와 검지 손끝에 생긴 굳은살은 웬만큼 뜨거운 것도 거뜬히 만질 수 있을 만큼 감각이 무디어졌다. 마음에도 이처럼 감정을 무뎌지게 하는 굳은살이 박이게 할 수는 없을까. 일생 고비마다 겪었던 어려움이 굳은살 되어 박였더라면, 마음고생은 한결 덜했으리라.

이제 수술 부위에 새살이 차올라 상처도 아물고, 흉터 치료를 위한 3번의 레이저 시술 과정도 끝냈다. 일 년이란 세월이다. 수술 흔적인 흉터는 아직 남아있지만, 우리 일생 중 또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해 질 녘 타오르듯 붉게 물든 아름다운 저녁노을엔 애잔함이 느껴진다. 우리 노년의 삶 또한 서로에 대한 애잔함이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정경자 6·25참전유공자 정동숙의 장녀로, 초등학교 교사로 36년간 재직했다. 은퇴 후 때때로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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