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손자의 중간고사 시험이 끝났다. 수학 시험지만 받아 들면 시간이 부족하면 어쩌나 미리 걱정부터 앞서서, 긴장되고 떨려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는 마음 여린 손자다. 그러니 1학기 수학 성적이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이번 2학기 수학 중간고사 시험 점수가 90점이란다. 크나큰 발전이다. 긴장감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결과리라. 본인은 물론 가족들 걱정거리 하나 덜어낸 기분이다. 수학 포기자가 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들을 했었다.

손자의 생일이 12월이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많게는 거의 1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친구들은 2차성징이 나타나는데 녀석은 아직도 초등생 티를 못 벗었다. 시험 망친 날엔 집에 와서 소리 내 엉엉 운다고 하니, 본인이 얼마나 속상했으면 사내 녀석이 울기까지 했을까 측은했었다. 나름 노력은 하고 있는데 실망스런 결과에 제 부모 걱정이 많았다. 마음 여린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는 카톡으로 가끔 용기를 북돋우는 격려의 글을 보냈었나 보다.

내 학창 시절의 긴장감 해소 방법은 ‘마음 비우기’였다. ‘이번 시험은 꼭 100점을 받아야지’하는 욕심이 앞서는 순간 불안감이 밀려오고 떨리기 시작했다. 녀석도 한 두 번 경험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시험 잘 못 봤다고 우는 녀석치고 공부 못하는 놈 못 봤다.

손주들이 100점을 받으면 장학금이란 명분으로 용돈을 준다. 귀여운 손주들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한 방법이다. 지난주 초등 3학년인 손녀가 전화를 했다.

“할머니, 저 곱셈 시험 100점 받았어요.”

애교가 뚝뚝 꿀 떨어지는 목소리다. 용돈 받고 싶다는 속마음이다. 맛있는 저녁도 사주고 장학금도 건넬 겸 만났다. 예약된 음식점에 도착해 기다리던 손주들이 반갑게 품에 와 안긴다. 식사 주문 후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의 자신감 돋우는 덕담에 이어 장학금 전달이다.

손자는 ‘발전상’

손녀는 ‘만점상’

할아버지가 써주신 장학금 겉봉투, ‘100점은 멋진 거예요’ 저만의 비밀스런 소통인 양, 두 손으로 가리고 빼꼼히 봉투 안을 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장학금 받아든 손주들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할아버지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꽃이 핀다.

이번 90점이란 점수가 수학에 대한 울렁증을 덜어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험 못 봐도 괜찮아. 시간에 대한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연습문제 풀 듯이 풀어 봐. 1학기 수학 시험이 네 뜻대로 안 되었듯, 그렇게 잘 안 되는 일이 앞으로도 많이 있을 거야. 이번처럼 한 가지씩 극복해가면서 성장하는 거란다. 심성 착하고 모든 걸 성실히 하는 넌 틀림없이 멋지고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할 거야. 걱정하지 마. 항상 사랑으로 응원한다.”

손주들은 받는 기쁨.

할아버진 주는 기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지갑 열어 손주들에 베푸는 것 또한 노년의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정경자 6·25참전유공자 정동숙의 장녀로, 초등학교 교사로 36년간 재직했다. 은퇴 후 때때로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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