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 한국외대 학생들이 한 데 모여 그리스 참전용사에게 보낼 감사편지를 만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 8월 30일 한국외대 학생들이 한 데 모여 그리스 참전용사에게 보낼 감사편지를 만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서울 마포구 한국 성니콜라스대성당.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대학생 2명이 단상에 올랐다. 니콜라오스 카르달리아스 그리스 국방차관,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한국정교회 대주교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 사람은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학과 심예원(23), 김소민(21) 학생이 그리스 참전용사를 위해 진심을 다해 쓴 감사편지가 낭독되고 있었다.

“빛나는 청춘을 포기하고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던 당신의 용기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에게 ‘현재’라는 선물을 준 그리스 참전유공자 여러분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모든 청춘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소민, 심예원 씨.
김소민, 심예원 씨.

이날 심예원, 김소민 씨는 경기동부보훈지청과 한국외대가 함께 진행한 ‘그리스 참전용사 감사편지 쓰기’에 참여한 19명의 학생들을 대표해 참석했다. 당초 지난달 5일 경기도 여주시 영월공원으로 새롭게 이전한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제막식과 함께 감사편지 전달식과 편지 낭독이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태풍 소식으로 제막식과 전달식이 각기 나눠 진행된 것이다. 두 사람은 직접 그리스 참전용사께 편지를 읽어 드리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거의 매년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에서 열린 추도식에 그리스 참전용사분들이 참석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념비가 기존 여주휴게소에서 영월공원으로 이전하게 되는 것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에 저희들이 편지를 낭독하게 돼 밤잠을 설칠 만큼 설레었습니다. 아쉽게도 태풍으로 직접 현장에서 읽어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참전용사들께 전하는 감사편지 쓰기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쁩니다.”

두 사람은 곧 교환학생으로 그리스 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이번 편지쓰기는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김소민 씨는 감사편지 쓰기를 시작한 때가 방학기간이라 참여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저희 학과 학생 수 자체가 적은 편인데 30여 명 중에서 19명이나 학생들이 참여해 놀랐고, 기뻤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할아버지 고향인 이북 땅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 등 제게는 교과서 속 먼 이야기가 아니라 제 가족의 아픈 역사죠. 그래서 당시 우리를 도와줬던 분들께 이렇게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망설이지 않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심예원 씨가 이어 말했다.

“저는 1학년 그리스 역사 수업 때 그리스 공군에 대한 발표를 맡았습니다. 그리스 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자연스럽게 조사를 하게 됐죠. 당시 참전했던 군인들의 사진을 보며,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소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용기를 낸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또 제 또래의 군인들이 당시 겪었을 전쟁의 상흔을 생각하며 울컥했습니다. 이번에 편지를 쓰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심예원, 김소민 두 학생 뿐만 아니라 이번 감사편지 쓰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참전국과의 우정의 중요성과 미래 한국과 그리스를 잇는 가교 역할을 생각하게 됐고, 이번 편지쓰기가 학과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매년 이어진다면 좋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두 사람은 그리스 행을 위한 준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번 편지쓰기에 참여한 후 한국과 그리스 두 나라 간의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리스에 관련 시설을 찾아봤다”면서 “그리스에 도착하는 대로 시간을 내 아테네 파파고시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많은 깨달음과 울림을 느꼈습니다. 참전용사분들을 만나게 되면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보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세대는 결코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라고요.”

조금은 수줍게 인터뷰를 시작했던 두 사람이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 만큼은 단호한 목소리로 확신에 찬 눈빛을 빛냈다. 그 모습에서 지금의 ‘따뜻한 하루하루’를 만들어준 참전용사에 대한 ‘단단한’ 진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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