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의 등불처럼 많은 시련 앞에 사람의 신념은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때로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 호수 전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역경을 단단한 믿음으로 헤쳐나가는 이들을 경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숨결의 바람이 아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태풍을 버텨내며 한 발 한 발 묵묵히 자신의 걸음을 내디뎠던 이들. 일제강점기 격동과 핍박의 시대에 짧고도 강렬한 생애를 지낸 안중근과 윤동주를 각각 소설과 평전으로 만납니다.

‘하얼빈’ 김훈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일컬어지는 소설가 김훈의 장편소설로, 오랜 기간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소설로 풀어내고자 한 작가의 고민과 깊이가 전해진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중략)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안중근은 출입이 무상했다. 한번 나가면 멀리 다녔다. 아내에게 돌아올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몇 달씩 밖으로 돌다가 절기가 바뀌고 나서 돌아오는 일도 흔했다. 안중근의 아명은 응칠이었는데 안태훈은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주느라고 무거울 중과 뿌리 근을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었다. 개명은 안중근의 기질을 바꾸지 못했다.

△수백 년 동안의 수탈과 억압으로 검불처럼 무기력해 보이던 조선 백성들이 무너진 왕조의 부흥을 외치며 그토록 가열하게 봉기하는 사태가 이토는 두려웠다. 농장기를 들고, 꽹과리를 치고,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펄럭였지만 조선의 폭민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어섰고 한 고을이 무너지면 이웃 마을이 또 일어섰다. 기생과 거지까지 대열에 합세했다.

△둘은 사진관 의자에 앉았다. 사진사가 카메라 뒤에서 러시아 말로 뭐라고 소리치더니 셔터를 눌렀다. 새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몸 매무새와 이발을 한 이목구비가 사진에 찍혔다. 안중근은 사진값으로 이 루블을 냈다. 러시아인 사진사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닷새 후에 와서 사진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닷새 후에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1905년 12월에 조선 청년 안중근은 상해에서 돌아왔다. 그해 안중근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상해에서, 뜻있고 힘있는 한인들을 규합해서 국권회복의 실마리를 만들려던 안중근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 살아가고 있었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 말했다. 동북아와 구미 열강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안중근에게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 년 앞을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충고는 간곡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윤동주 평전’ 송우혜

사학자이자 작가인 송우혜 가 윤동주의 삶과 죽음, 그리고 윤동주 문학의 순결한 초상을 되살려냈다. 윤동주의 다채로운 삶의 자취를 쫓는다.

△북간도가 낳은 민족시인 윤동주! 우리 문학사에서 윤동주와 그의 삶은 이미 하나의 전설이다. 험하고 어두웠던 시대, 수많은 사람들을 오염, 파괴, 타락시켰던 그 사악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나날의 삶과 시, 그리고 죽음까지도 눈 시리도록 정결하게 가꾸어낸 시인 윤동주…. 좋은 추억은 이미 그 자체로 은총이듯 그의 존재와 추억은 한국문학이 소유한 기쁨, 또는 하나의 구원이다.

△그러한 처참한 생활 속에서도 윤동주는 오히려 한 마리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귀담아 들었으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그 정결한 문체로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써보냈다. 아아! “고마운 일이다”라니! 읽어내리기에 그저 목이 메인다.

그 간악한 일제 감옥의 인간 이하의 취급도 그의 관유하고 고결한 인품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이 구절은 통렬하게 증언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고 한 그의 정신은, 그가 처한 처참한 상황을 그토록 맑고 지순한 모습으로 견디어내고 있었다.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그렇다! ‘부끄럼’이란 것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럼에 마주서자면 그의 전 존재, 그의 전 중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서 본 경험이 없는 한 이토록 가슴을 치는 절창은 솟아날 수 없다. 윤동주는 언제 어떻게 해서 이토록 무서운 ‘부끄럼’의 본질을 알아낸 것일까.

△‘별 헤는 밤’은 청신한 가을밤의 맑은 별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이다. 윤동주의 맑고 청결한 기품과 함께 그의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이제까지 윤동주의 삶과 시에 나타난 고통과 갈등, 그 부단한 자기성찰과 다짐의 오뇌를 지켜보아온 우리로서는, 이제 그가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자기를 세우고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라고 독백할 때, 마음 깊은 곳의 금선이 아프게 건드려짐을 느낀다.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 삶의 질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때로 모든 피조물들이 영혼 깊은 데서 어둡게 뇌이는 고뇌의 탄식을 듣는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탄식한다. 방황한다. 그때 윤동주의 시는 고요히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아진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어둡고 혼탁해질수록 윤동주의 시는 정결하고 청정한 인간정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더욱 선연하게 일깨워준다. 오늘도 우리는 그의 저 아름답고도 무서운 시구 앞에 선다. 그러면 우리의 눈은 홀연히 밝아진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렇게 갔다. 자기의 겨레와 그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강렬한 수호 의지를 지녔던 이들. 그들은 그 길을 힘써 달린 끝에 한 민족이 자신의 야욕을 위해 다른 민족을 혼도 얼도 빠진 허깨비로 만들어가던 그 비인간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젊은 제물이 되어 산화한 뒤, 그들을 낳고 기른 북간도 하늘 아래 묻혔다. 일제 특고경찰 취조문서에 수록되어 있는 그들의 예측대로, 일본제국이 스스로 일으킨 전쟁에서 패하여 멸망하기 꼭 반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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