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들만 둘이다. 그러니 우리 집에선 내가 홍일점이다. 홍일점은 대부분 대접받고 귀하게 사는데, 우리 집은 남자들이 대접받고 살았다. 큰아들은 결혼해서 분가하여 살고 있고, 작은아들은 아직 미혼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세대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탓에 남·여 평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친정아버지도 평생 주방 근처엔 오지 않으셔서 주방 일은 여자들 몫인 줄로만 알고 커왔다. 그 탓에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계속했지만, 집안일은 오롯이 내 몫으로 생각해 왔다. 1인 3역으로 동분서주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남편은 집안일엔 거의 무관심으로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어렸을 땐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고, 출근은 그가 먼저, 퇴근은 내가 빨랐기에 상황 판단이 잘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집안일이 너무 힘들 땐, 서운한 감정이 왜 없었겠는가. 싸움도 해봤지만 변화되는 것은 없었고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니, 결국 내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와 난 닮아도 너무 닮고, 달라도 너무 다른, 평생 차선 변경 한번 없이 오직 곧은 길로만 직진해온 겁쟁이들이다.

이제 서로 은퇴한 지 15년이 넘었다. 처음 은퇴할 때만 해도 남편은 여전히 주방일은 본인과는 상관이 없는 듯 처신해왔다. 모든 집안일은 계속 내 몫이었지만 그러려니 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두 남자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아들은 분리수거를 도맡아 하고, 모든 택배물 뒷정리는 제 소관이란다. 가끔 설거지도 한다. 나이 들어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측은지심을 유발한 걸까? 아니면 두 남자가 그동안의 일들을 반성하고 있는 걸까? 몇 년 전부턴 집 안 청소를 도와주더니, 설거지는 평생 ‘나 몰라라’ 하던 그가 며칠 전엔 아예 자기가 맡겠다고 나선다. 나는 음식 만들기만 전담하란다. 놀라운 반전이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을 뒤돌아보면 슈퍼우먼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 그리 힘들게 살 수 있었을까. 숨 가쁘게도 살아왔다. 다시 젊은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은퇴 후 지금의 삶이, 일생 중 가장 행복한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집안일 도와주려 노력하는 아들도 고맙고, 늦은 나이에 설거지 도맡아 하겠다는 그도 고맙고. 내게 도움 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요즘 달라지고 있는 우리 집 남자들 덕에 한결 집안일이 수월해졌다. 늦은 감은 있지만,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와 나의 서로 다름은 함께 고생한 오랜 세월에 용해되어 녹여져서 이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젊은 날의 아옹다옹 투정도 이젠 아련한 기억으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그땐 왜 그리 섭섭했는지 모른다. 그는 나의 평생 반려자요, 나는 그의 인생 길동무로 살아온 세월에 서로에 대해 애틋함이 묻어난다.

우리가 언제까지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경자 6·25참전유공자 정동숙의 장녀로, 초등학교 교사로 36년간 재직했다. 은퇴 후 때때로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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