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 전시장 전경.

대한민국 제2의 수도이자 제1의 무역항인 부산. 6·25전쟁 후 피란민들을 품어내 현재까지도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산은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의 단면을 안고 있다. 미술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에서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가 10월 16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서 열리고 있다.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지난 25년 동안 축척해온 부산 출신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수집, 연구, 전시 성과를 토대로 ‘부산미술’을 한국근현대 속에서 새롭게 꿰어보는 기획전으로 마련됐다.

이창운 ‘편도여행’, 2018.
이창운 ‘편도여행’, 2018.

이번 전시는 인간이란 자신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주어지는 환경은 인간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점에 착안해 미술작품 역시 순수미술의 영역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주어진 제약과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전시의 제목도 이러한 전제를 따라 부산의 역사와 미술 또한 현실과 예술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에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산미술 작품 중 제작연도가 가장 이른 우신출의 1929년 작 ‘영가대’부터 가장 최근작으로는 이창운의 2018년도 작 ‘편도여행’에 이르기까지 90여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부산 작가 23명의 작품 50여 점을 선보인다.

양달석 ‘판자촌’, 1950.
양달석 ‘판자촌’, 1950.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로비에 걸린 5개의 작품, 조형섭의 ‘근대화 슈퍼’, 정진윤의 ‘추락하는 날개-도시’, 이창운의 ‘편도 여행’, 서평주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전준호의 ‘우리가 믿는 신 아래’가 보인다.

이 5개의 작품은 이번 전시가 드러내려 하는 총체적 세계의 모습을 ‘근대’ ‘도시’ ‘자본주의’ ‘국가’ ‘역사’라는 각각의 주제어를 구체적이며 추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근대 문명의 발전과 인간성의 후퇴가 서로의 전제가 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해방과 속박이 서로에게 조건이 되며, 결핍과 욕망이, 상실과 쟁취가, 자유와 평등이 불완전한 채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서로를 만들어 나가며 역사를 이뤄내는 세계의 구성과 한계를 짐작케 한다.

이혜주 ‘무제’, 1996.

이어지는 전시는 우신출의 ‘영가대’, 양달석의 ‘판자촌’, 최종태의 ‘침묵의 대화’, 이혜주의 ‘무제’를 중심에 두고, 각각 ‘식민도시 부산’ ‘귀환과 피란의 부산항’ ‘전쟁특수와 산업화’ ‘부마민중항쟁과 노동자투쟁’이라는 4개의 소주제로 나눠 당시의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다.

각각의 소주제는 역사적 사건이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의 발전과 모순을 포함해 한 단계에서 특정한 문제의식이 폭발적으로 분출돼 새로운 역사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소주제에 묶인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최종태 ‘침묵의 대화’, 1970.

‘식민도시 부산’은 제국주의 시대 도래가 어떻게 부산을 근대 식민도시로 만들었는지를, ‘귀환과 피란의 부산항’은 일제 패망 이후 한국전쟁기를 거치며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도시 부산의 변화와 민중들의 고단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전쟁특수와 산업화’는 도시 부산이 한국전쟁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의 역사로 들어서게 되는 1960~1970년대의 상황을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각각 들여다 본다.

또 ‘부마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은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의해 소외되었던 민중,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민중의 역사적 두 면모를 동시에 확인하게 한다.

이 전시회는 각 소주제에 맞춰 부산의 사학자, 경제학자, 노동운동 전문가의 인터뷰 영상도 상영되고 있어, 시대상황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부산의 역사와 미술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서 10월 16일까지 계속된다.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문의 051-744-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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