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청주에서 열린 6·25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 위로연 및 안보결의대회에서 청주아리랑예술단이 공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그치고, 물기를 머금은 초록이 더욱 생기를 빛내는 여름날, 충북 청주 흥덕초등학교 앞 골목길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간 곳에서 장구로 장단을 맞추고, 시원하게 민요를 부르고 있는 청주아리랑예술단 송면섭(78) 단장을 만났다.

청주아리랑예술단은 송면섭 단장이 2015년부터 단장을 맡은 이래 ‘사랑을 실천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미소를 전한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단은 지난 7년간 지역사회나 보훈단체 행사에서 우리 민요와 가요 공연을 전문적으로 선보이며 지역사회에 흥을 더하고 있다.

현재 주로 활동하는 단원들은 20여 명, 전체 단원은 60여 명에 달한다. 단원들은 예술단의 취지에 적극 공감해 참여하고 있으며, 전문 소리꾼부터 시작해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를 잘하는 다재다능한 월남전참전자회 또는 상이군경회 회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최근에는 재능기부이자 지역사회 봉사활동으로 일주일에 1회 이상 주간노인보호센터나 요양원을 찾아 노래와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있다.

“우리 단원들이 아주 열심히 공연을 하면 관객들도 절로 흥이 올라 어깨춤을 들썩이면 저희도 덩달아 신이 나죠. 공연을 마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질 때, 환호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와 환한 미소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평생 공연과는 관련 없는 삶을 살았던 그가 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낯선 월남땅에서 전쟁의 긴장이 계속되는 와중에 처음으로 위문단을 접했는데, 좌중을 압도하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모습에 반했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열기에 매료됐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은 오래도록 그의 뇌리에 남았고, 은퇴 후 인생 2막을 고민하던 중 그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웠다.

“벌써 5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위문공연 현장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우들을 비롯해 제게도 큰 위로가 됐는데 지금은 제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이 일에 뛰어들기를 잘 결정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송면섭 단장에게 월남전 참전 경험은 여러모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폭격 속에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그가 속해 있던 대대원의 삼분의 이가 유명을 달리했고, 자신도 왼쪽 눈과 왼쪽 팔다리를 크게 다친 상태였다. 부상을 이겨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먼저 간 전우들 몫까지 더 열심히, 더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후 그는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체 운영이 안정되자 곧바로 전장에서의 다짐을 실천하기로 했다. 우선 지역의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30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이후 10년간 지원은 계속됐다.

“여유가 생기자마자 내 소득의 한 부분을 좋은 일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더 잇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았기에 자라나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좌절을 겪지 않도록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또 송 단장은 전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생각에 월남전참전자회와 상이군경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1995년부터 월남전참전자회 청주시지회장에 이어 2002년부터 충북지부 부회장을 맡았다. 현재도 그는 상이군경회와 월남전참전자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인복이 참 많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예술단 단장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예술단 활동을 통해 함께 어울려 어깨춤을 추고, 마냥 옆에 있어도 즐겁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전우들을 위해서라면 예술단을 이끌고 전국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돼있습니다.”

송면섭 단장은 전국의 보훈단체를 찾아 코로나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순회공연을 하는 것이 일생의 마지막 꿈이라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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