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물체가 진동했을 때 청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한적한 대낮 아파트 위층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또한 한밤중 강아지 소리가 들려오면 꼭 고향의 소리 같아서 운치가 있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삼희성(三喜聲)이 있다. 세 가지 소리인 다듬이질 소리, 책 읽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는 태평연월을 누리는 다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지난날, 풀 먹인 이불호청을 다듬이에 올려놓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방망이로 두드렸다. 그 방망이 소리는 내게 일찍이 난타의 리듬을 익히게 해줬다.

어머니는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고, 그 옆에선 조무래기 형제들이 큰소리로 국어책을 읽어 어머니를 기쁘게 했고 집안은 책 향기로 그윽했다. 갓 낳은 동생이 어머니에게 젖을 달라고 보채던 소리는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그야말로 스위트 홈이었다.

사람이 가장 듣기 싫은 흉악하다는 세 가지 소리도 있다. 삼악성(三惡聲) 즉, 사람이 죽었을 때 ‘초혼’의 소리와 불이 났을 때 ‘불이야!’ 외치는 소리, 또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놀라서 숨 넘어가게 ‘도둑이야!’ 고함치는 소리. 이 모두는 외마디 소리이고 급박한 소리다.

나는 그런 위급함을 알리는, 사람의 숨이 끊기는 듯 위급한 소리를, 한 여름밤 열한 시에 들었던 적이 있다.

그날밤은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 혼자 있게 된 날 밤이었다. 현관문을 밀고 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싶지만, 오금이 저려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저 무더위를 참으며 안방 불을 환하게 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 살림을 맡은 주부로서의 나는 여행을 간다든가 병으로 입원할 일이 생기면 살림부터 다독인다. 집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밑반찬을 준비하고 문단속을 하게 된다. 하물며 아무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시계가 멈춰 버린다면 집안은 어떻게 될까. 냉장고 안에 남겨진 반찬들은 부패할 것이고, 그동안 백 년을 살 것 같이 준비하고 써왔던 가재도구며 옷가지들도 방치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

요즘엔 입던 옷가지를 줄여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곤 한다. 신발과 책, 사진들을 정리하여 버릴 물건들은 고민하지 않고 정리한다. 남겨질 물건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정리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그 물품과 함께 들려오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가려보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흉측한 소리를 아니 듣고 살 수도 없지만, 조금 구분은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인생은 울음으로 태어났다가 수많은 소리를 내고 접하며 살다가 일생을 마감한다. 그래도 우리가 가는 마지막 소리는 비명이 아니고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는 없을까?

타인의 구부러진 삶이 보이는 요즘, 잘 살고 좋은 화음으로 마무리되는 인생이 됐으면 어떨까 하는 요즘이다.

이영숙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월남전참전유공자의 배우자로 오랜 기간 수필을 써왔다. 수필집 ‘행복의 바이러스’ ‘바람이 다니던 길’ ‘희망 리포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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