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달 13일 법원 등기 절차를 마무리하고 공식 출범했다. 5·18민주화운동 3단체 중 마지막으로 설립 절차를 마친 유족회는 20일 박해숙 초대회장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설립절차 진행,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5·18민주화운동기념일, 회장 취임식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 박 회장을 만났다.

“온 시민이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이렇게 공법단체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42년이나 걸렸습니다. 우리 유족들이 살아온 과정이나 단체 설립 과정 모두 힘들게 넘어온 만큼 지금부터 할 일을 하나씩 찾아 회원들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박해숙 회장은 우선 30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같은 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0년 그 뜨거웠던 여름 이후 우리 회원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최루탄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을 했고, 광주시민이자 유족으로서 ‘오월광주’의 명예회복 활동에도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고령에 접어든 유족들이 남은 시간 즐겁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더불어 행복을 나누는 일을 찾겠습니다.”

아직 남은 조직 인수 작업, 3~4개로 생각 중인 지부 결성 작업, 3단체 협력 사업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이번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예상했던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는 일’과 ‘5·18민주화운동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일 등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3개 단체가 협력해서 잘 추진해 보겠습니다.”

박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부속고 3학년이었던 남동생이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희생되면서 뜻하지 않게 ‘유족회원’이 됐다. 그 역시 10일간의 항쟁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도청 앞에서 때론 시위로, 때론 지원활동으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공법단체 첫 유족회장이 된 그는 ‘유족’의 이름으로 이웃 유족을 위로하고, 그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책임을 짊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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