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제 선생은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 의병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랐다. 일제에 맞서 목숨을 끊은 송병선과 항일투쟁에 나섰던 기우만 의병장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들의 행적 등 항일투쟁 기록을 모았다.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의 재판과정을 방청하며 기록하기도 했다.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기록하는데 힘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염재야록으로 붙인 책 제목을 덕촌수록이라 이름 붙여 숨겨두었다.

그러나 염재야록 편찬 사실이 1938년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서문을 썼던 최병심, 발문을 썼던 이병은, 교정을 보았던 김영한 등과 함께 선생은 임실경찰서로 연행됐고 이 과정에서 선생의 글은 물론 집안 대대로 간직해온 다양한 자료들을 모두 압수당했다.

거의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일제의 단발 종용에 결국 자결순국했다. 다행히도 마루 밑에 보관해두었던 덕촌수록을 해방 후 선생의 제자인 조현수가 염재야록으로 간행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염재야록은 당시 의병운동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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