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열린 네덜란드 인빅터스 게임에 출전한 김윤근 선수(앞줄 가운데)가 영국 해리 왕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네덜란드 인빅터스 게임에 출전한 김윤근 선수(앞줄 가운데)가 영국 해리 왕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잠실 한강공원,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하는 이곳에 조금 특이한 모양의 자전거가 눈길을 끈다. 차체가 낮고 바퀴는 세 개, 안장 끝에는 빨간 해병대 깃발이 달렸다. 페달을 발 대신 손으로 잡고 돌리면 핸드사이클이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바로 올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사이클 종목에 우리나라 대표로 출전한 월남전참전유공자 김윤근(73) 선수다.

‘인빅터스’는 라틴어로 ‘정복당하지 않는’ ‘불패의’라는 의미로, ‘인빅터스 게임’은 2014년 영국 해리 왕자가 창설한 국제 상이군인 체육대회의 명칭이다. 올해 4월 16~22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대회에는 20개국 10개 종목의 선수 500여 명이 참여했다. 김윤근 선수는 73세로, 출전선수 중 최고령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이번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인빅터스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있습니다. 물리적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상이군인에게 아주 어울리는 단어지요. 환영회에서 해리 왕자를 만나 직접 대화할 수 있어 좋았고, 엄청난 대회 규모를 보며 대한민국의 상이군인이라는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사이클 종목 4위에 오르며 최고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좋은 기량을 뽐냈다. 수많은 외신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최근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촬영도 마쳤다. 현장에서는 해외 선수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기념사진 촬영이 줄을 이었다.

“제가 해병대 출신 아니겠습니까.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해병대 티셔츠와 깃발을 많이 준비해갔는데 인기가 대단해 금방 동이 났습니다. 외국 선수들과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몸짓으로 소통했습니다. 또 부상을 당한지 오래되지 않은 선수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예전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1968년, 이제 막 약관을 넘긴 젊은 나이에 그는 월남전에 참전해 삼엄한 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지뢰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정신이 들어 병상에서 처음 이불 아래를 들춰보고는 그대로 혼절할 뻔 했습니다. ‘내가 있던 곳은 전쟁터구나. 신체의 많은 부분을 잃었구나’ 생각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역 후 보훈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면서 주변의 권유로 재활체육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1985년에 론볼이라는 종목으로 시작했는데, 2011년에 핸드사이클을 접하고는 곧바로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핸드사이클에 입문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부산유엔기념공원에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 국립서울현충원까지 달리는 ‘나라사랑 국토종단 희망의 핸드사이클 700㎞대장정’을 완주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희망의 핸드사이클 600㎞대장정’에도 참여했다.

“아직도 미국 대장정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참을 달리던 중 빗물 때문에 내리막길에서 심하게 넘어져 얼굴과 어깨 가 다 쓸리는 부상을 입었죠. 가족과 선수단은 일단 이번 완주는 포기하자고 했지만 저는 간단한 처치만 하고 다시 페달을 돌렸습니다. 수십, 수백의 해외 관중이 쏟아내는 환호와 응원 덕분에 아픔도 잊고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끈기와 불굴의 의지로 매번 목표를 달성해내며 그에게 핸드사이클은 인생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중심축이 됐다. 가족들은 혹여나 무리할까 염려하면서도 열렬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응원에 힘입어 김윤근 선수는 철저한 식단관리와 꾸준한 훈련으로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 않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올해 전국체전에 출전해 메달권에 드는 것입니다. 또 이번 인빅터스 게임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교류하며 재활체육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전쟁 없는 세상의 중요성을 알리고, 재활체육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캠페인을 기획해보려 합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많은 상이군인과 재활체육인 후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밝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다시 페달을 힘껏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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