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부르주아의 ‘코바’와 시프리앙 가이야르의 ‘호수 아치’가 전시된 전시장 모습.

내가 기억하는 것, 너에게 남겨진 것, 그리고 왜곡. 기억은 무엇으로 남았을까. 그것은 또 어떤 의미로 오늘의 역사에 각인될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기억’을 주제로 한 기획전 ‘나너의 기억’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달 8일 문을 연 전시는 오는 8월 7일까지 계속된다.

기억(Memory)은 인간의 뇌가 받아들인 인상, 사건, 경험 등 정보를 저장한 것, 또는 시간이 지난 후 이를 떠올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 공동체집단, 사회가 축적한 다양한 기억은 작가의 통찰과 예술적 구현방식이 반영된 작품으로 재해석된다. 모든 작품의 기억의 흔적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어제와 오늘의 정보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이를 위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반성하고 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남겨야 하는지 고민하는 장이다.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300×197×197.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300×197×197.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는 작가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깊은 밤 경비 초소의 경비원이 조는 모습을 보고 그의 고단한 삶과 꿈속 이야기를 상상하며 제작한 키네틱 조각이다. 과거에 직접 목격한 자신의 기억, 그리고 목격한 풍경 속의 타인이 갖고 있을 기억과 꿈을 작품에 담아내며 개인의 기억은 ‘나’와 ‘너’의 기억이 중첩되어 형성된다는 것을 환기한다.

아크람 자타리의 ‘스크립트’는 서구 미디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이슬람 가정 풍경을 보여 줌으로써 이슬람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일반화된 시각을 재고해볼 것을 제안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 취득하여 기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질문한다.

안리 살라의 ‘붉은색 없는 1395일’은 사라예보 포위전(1992~1995) 당시 도시의 상황을 연출한 영상 작업. 사라예보 포위전은 보스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나치 학살 이후 유럽 최초의 집단학살이다. 지역적, 사상적 노마드를 자처하는 작가는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인물들의 몸집과 호흡, 교향악단의 연주를 통해 표현하고 공감각적인 조형 언어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박혜수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구로 공단을 비롯한 공업 단지의 노동자 21여 명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인터뷰한 영상과 그 인터뷰를 듣고 첫사랑의 이미지를 구현한 회화 작품이다. 이제는 떠나가고 없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온전한 개인의 역사이며,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첫사랑 이야기는 주인공과 전혀 연관이 없는 젊은 작가에게 전달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우리에게 과거 그들의 첫사랑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나의 기억과 너의 경험, 공동체를 덮쳤던 사건들은 오늘 무슨 기억으로 남았을까.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관람료는 서울관 통합권 4,000원. 국가유공자 본인 및 가족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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