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등록심사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보훈심사를 진행할 국민참여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국가보훈처는 시범운영 등을 거쳐 2021년도에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올해 1월에 보훈심사 국민참여단 100명도 선정 완료했다. 보훈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크게 높여줄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의 준비과정과 제도의 설계를 자세히 살펴본다.

보훈심사 제도 새로운 혁신 시도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는 2017년 국가보훈처 내 행정 혁신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시작됐다. 그간의 보훈심사는 정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의료·법률 분야 전문직위원을 중심으로 국가유공자의 등록요건 확인 및 상이등급 구분 심사를 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문가 위주의 심사위원 구성으로 인해 심사 기준이 국민정서와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혁신TF 활동을 통해 보훈심사에 배심원제도를 도입해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 일반 국민이 보훈심사 과정에 참여하고, 그 의견을 심사결과에 반영함으로써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2018년, 국민참여제도 초기 모델인 ‘국민배심원’ 제도가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공개모집으로 구성된 40여 명의 국민배심원단은 2018년 1월부터 매월 1회씩 열리는 보훈심사과정에 참여했다. 이들은 심의안건에 대한 설명과 심사위원단의 의견과 신청인 진술까지 청취한 후 배심원단 토의를 거쳐 각자 자신의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상반기 시범운영을 통해 새로 도입한 국민배심원제도가 심사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동시에 일반 국민의 시각을 보훈심사에 반영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2018년 하반기에는 상반기 시범운영의 성과를 바탕으로 참여 배심원단의 수와 심사안건의 수를 늘렸고,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법제화 검토가 시작됐다.

‘좋은 정책’…법·제도적 근거 마련

2019년 국민배심원제도는 시민참여제도로 명칭을 변경했다. 보훈처 훈령으로 세부 운영세칙을 제정하고, 참여단 130명을 공개모집해, 매월 열리는 보훈심사에 시민 9명씩 참여토록 했다. 2019년 1년간 시민참여심사는 4월부터 9월까지 모두 여섯 차례 열렸다. 그러나 2020년 들어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참여심사는 네 차례만 열린채 잠시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제도는 멈췄지만 내부적인 평가와 발전방안에 대한 모색이 계속됐다. 보훈처는 시민참여심사에 들어온 시민들의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90%대를 유지한 것에 주목했다. 국민이 직접 보훈심사에 참여함으로써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그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2019년 시민참여제도는 정부혁신 모범 사례로 꼽히며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20년에는 중앙·지자체 정책을 국민 투표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올해의 베스트 정책17’ 명단에도 오르며 ‘좋은 정책’으로 인정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국가보훈처는 제도 중단 상황에서도 2021년 6월 국가유공자법 개정(2021.12.9.시행)을 통해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로 명칭을 조정하고, 같은 해 10월 시행령 개정으로 법제화를 마무리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제도는 이제 국민참여단 선정 등 본격적인 제도 시행의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실시한 국민참여단 공개모집에는 100명 모집에 총 449명이 지원해 4.5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보훈처는 직업, 연령, 성별, 거주지 등을 고려해 최종 100명을 선정했다. 이 중에는 세대통합을 고려해 60세 이상 24명, 29세 이하의 청년도 19명이 포함됐다. 또 국민참여단에는 여성이 40명 선정돼 성비도 맞췄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는 문을 활짝 열게 된다. 보훈심사회의가 열리면 지역·연령·성별 등 균형을 고려해 본회의에는 9명, 분과회의에는 7명의 국민참여단이 각각 참석하게 된다. 국민참여단은 안건에 대한 신청인의 진술, 심사위원의 의견 등을 청취한 후 국민참여단 내 토의를 거쳐 각자의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의견은 심사위원들이 최종 결정에 참고자료로 활용 된다.

국가보훈처는 3년여 간의 운영과 법적 근거를 마련해 시행에 들어가는 국민참여제도가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외에도, 국민이 함께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2019년 열린 보훈심사회의에 참여한 시민참여인 9명이 안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눈높이 맞는 상식적 판단 기대합니다”

국민참여 보훈심사에 ‘참여’한 사람들

2019년 제1차 심사회의에 시민참여단으로 참여한 ㄱ씨는 “딱딱하게만 생각했던 보훈심사에 직접 참여하고 경험해보니 심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보훈심사가 매우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활동 과정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의견을 전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해 제3차 심사회의에 참여한ㄴ씨는 “위원회 토의 내용을 직접 들어보고 의견을 낼 수 있어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전문심사위원들이 가능한 신청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와주려 한다는 느낌이 들어 심사과정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고 밝혔다.

2020년 심사회의 참여한 ㄷ씨는 “보훈심사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알 수 있었고,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하게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을 직접 확인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에 대해 “법원의 국민참여재판과 같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편타당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익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한편 올해 새롭게 국민참여단에 선정된 시민들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40대인 ㄹ씨는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께서 지난해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으셨고,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날 가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기뻐했다”면서 “이후 보훈심사 과정이 궁금해져 지원했는데 열과 성을 다해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60대인 ㅂ씨는 “봉사활동을 이어오던 중에 참전유공자의 자택을 보수해드린 적이 있는데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훈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국민참여단 모집 소식을 듣고 그날의 참전유공자 어르신을 떠올리며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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