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시대를 이겨낸 우리는 독립·호국·민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전쟁, 독재라는 어두운 역사를 안고 있지만 독립운동, 국가 수호, 민주 혁명이라는 빛나는 역사도 갖고 있습니다. 독립·호국·민주로 집약되는 나라사랑의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보훈의 시작입니다. 보훈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에 대해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습니다.

1. 국가 공동체에서 보훈이 갖는 의미

국립대전현충원 전경.
국립대전현충원 전경.

전 세계에는 혈통, 언어, 종교,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193개 국가(유엔 가입 기준)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국가의 존립을 유지하고 발전을 지속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위기와 난관이 있기 마련이다. 세계 지도에 그려진 한 국가의 영토는 그 나라 국민들이 함께 치른 희생의 발자취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의 독립과 생존에는 국민의 단합된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선열들의 피와 땀이 어린 헌신과 봉사, 그리고 희생으로 일구어 낸 결실이다. 보훈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에 보답하는 것이다.

(1) 국가 공동체에서 보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공동체는 인간의 공동생활이 영위되고 있는 일정한 사회 집단을 말한다. 공동체는 의식주와 방위를 목적으로 형성된 혈연 공동체, 촌락 공동체, 농촌 공동체 등에서 국가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국가 공동체는 여타의 공동체와 달리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지 않고 의무와 규율이 있으며,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거나 흡수되지 않는 한 영속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 공동체는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권리에 따르는 의무의 준수는 물론이고, 함께 살아가려는 공존의 의지와 공동체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 중요하다. 세계 각국이 저마다 과거에 치른 희생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것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훈은 본질적으로 국가 공동체의 안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병역 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근대적 보훈은 시기적으로 대규모 상비군의 편성과 시기를 같이한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방과 보훈은 한층 더 밀접한 관계 속에서 강화되고 있다.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는 불가피하게 희생이 수반된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뛰어난 용기와 헌신으로 희생하였거나 공을 세웠다면 탁월한 행동으로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보훈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통하여 명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국가 공동체의 영속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보훈의 대상이 되는 희생과 공헌은 국가의 수호와 직접 관련된 것이지만, 구체적인 범위는 국가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나라마다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통적 보훈의 대상은 영토 수호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하였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다.

둘째, 국권을 상실하였거나 이웃 나라에 점령된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독립운동이나 저항 운동이 포함된다.

셋째, 국가·사회의 안전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거나 국가·사회의 발전을 위해 특별히 헌신한 사람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제주호국원 1호 안장자인 6·25참전용사 고 송달선 하사의 안장식.

(2) 보훈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살펴보자.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국민 각자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개인적 성취를 이루고, 권리에 따르는 의무와 공적 봉사를 통하여 국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한다.

국가는 국민 각자의 희생과 공헌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또 그에 상응한 보답을 행한다. 국민 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희생과 공헌이 인정되고, 그에 상응한 보답이 따른다면 국가 공동체에 강한 애착심과 유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보훈이 국가 공동체에서 작용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에 대한 애착심에 근거하여 헌신과 봉사가 이루어지고, 국가는 희생과 공헌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여 상응한 보답을 행한다. 국민 개개인은 국가의 보답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강한 정신력을 가지게 되고, 명예 존중의 사회적 기풍과 결합되어 국가 공동체의 번영에 이바지한다. 이 때 번영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높은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보훈의 원리가 잘 작동하는 국가에서는 나라를 위한 헌신과 봉사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오늘의 세대는 앞선 세대의 피땀 어린 성취를 바탕으로 미래 세대가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책무가 있다.

(3) 보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보훈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에 대해 그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갚는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존해 있을 때 최고로 예우하고 사망한 후에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보훈은 희생의 가치를 인정(recognition)하고, 최대한의 보상(compensation)으로 영예로운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며, 명예(honor)를 존중하고 기념(commemoration)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희생의 인정과 최대한의 보상>

보훈의 첫 번째 책무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정부가 직접 독립운동, 전쟁, 저항 운동 등의 참가자를 찾아서 예우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 다음은 명예로운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보상하며, 국가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잘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일찍이 보훈이 확립된 서양에서는 조국이 필요로 할 때 전쟁에 나가 싸우던 중의 희생은 존엄한 가치로 영구히 존중되어야 하고, 직업 활동 중 재해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원칙이 뿌리내려 있다. 구체적인 보상 내용은 희생에 대한 금전적 보답으로 지급되는 보훈연금과 의료, 교육, 취업, 주택, 양로 지원 등의 예우와 사회적 우대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보훈 연금은 자산이나 희생과 공헌에 대한 보상금으로 국민의 최저 생활 보장의 원리에 입각하여 자산과 소득의 정도 에 따라 지급되는 사회 복지 급여와 엄격히 구별된다.

<명예의 선양과 기억의 전승>

보상과 예우가 물질적 보답이라면 명예를 선양하고 자존감을 높여 주는 것은 정신적 보답에 해당한다. 정신적 보답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교부하는 등으로 명예를 선양하고 사회적 우대를 행한다. 사망하였을 경우에는 품격 있는 의전과 정성으로 장례를 행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한다.

둘째, 희생의 가치, 예컨대 자유, 평화, 민주, 정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전승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기념일과 기념 시설, 그리고 체험과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기억의 공유와 전승에 노력한다.

2. 국가의 발전과 보훈의 역할

국가와 개인 사이의 헌신과 보답의 관계는 국가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근대 국가 성립 이후에야 국왕이 내리는 은전과 시혜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 고위 군사 지휘관에서 하급 병사가 포함된 보편적 제도로 발전하였다.

보훈의 역할은 국가 공동체를 온전하게 유지하게 하고,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정신적 토대가 된다. 또한 보훈은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윤리 의식과 명예 존중의 정신을 함양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보훈을 국가 발전의 중요한 원리로 활용한 나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도 있다. 오늘날 세계사를 주도하는 앞선 나라일수록 보훈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다.

(1) 보훈은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동아시아의 보훈>

가장 오래된 보훈의 모습은 일찍이 통일 국가가 건설된 중국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11세기에 시작된 주나라는 ‘사훈(司勳)’이라는 기구를 두고 군공(軍功)을 6등급으로 나누어 그에 합당하게 은전을 내려 주었다.

기원전 4세기 군웅들이 할거하던 춘추 전국 시대 서쪽 변방의 진(秦)은 군공을 20등급으로 세분화하여 시행하였다. 그에 따라 서민이나 하급 병사라 할지라도 군공의 정도에 따라 관직, 토지, 주택 등의 은전을 받고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기원전 202년 진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한(漢)은 법령에 의해 군공을 세운 장병들에게 토지와 가옥을 내려 주었다. 기원 후 3세기 초 후한 말 조조는 보훈의 선구자였다. 조조는 전사자의 장례를 치러 주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소와 전답을 내려 주어 생계를 유지하게 하였으며, 학교를 지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조조의 보훈 포고령은 오늘날의 보훈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앞선 것이었다.

이후 왕조의 교체와 병역 제도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한 형태로 청(淸) 말까지 이어졌다. 그에 비하여 우리 역사 속의 보훈은 6세기 중반에, 일본의 경우는 7세기 중반에 그 기록이 나타난다.

영국 런던의 한국전 참전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양귀비 꽃다발이 놓여있다.

<서양의 보훈>

서양의 보훈은 중국보다 늦은 기원전 5세기경에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패자에 오를 수 있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의하면 아테네는 케라메이코스에 국립묘지를 세워 전사한 장병을 국장으로 안장하였다.

고대 로마는 시민을 자산의 정도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하고, 1등급 내지 3등급은 중장보병, 4등급인 평민은 경장보병, 5등급인 무산 계급은 예비역이나 면제 대상이었다. 다수의 민병과 소수의 지휘관으로 구성되었던 초기 로마군의 보훈에 대해서는 구체적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다가 지원병제와 상비군제로 변화되면서 장기복무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퇴직 보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북부의 피렌체는 노병의 정착지로 건설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세 유럽은 기사로 대표되는 직업 전사의 시대였다. 기사들은 영주에게 군사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영주는 기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형태였다. 그러다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군사 제도가 상비군 체제로 변화됨에 따라서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과 치료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에 따라 법령에 의하여 연금이 보장되고 부상자를 위한 병원을 겸한 안식원이 건설되었다.

보훈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획기적 변화를 맞이한다. 전후 무명용사의 묘가 세워지고 현충일이 제정되었으며, 장병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많은 기념물이 세워졌다. 이는 전통적 보훈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후 유럽의 보훈은 종래 왕명에 의한 은전에서 보편적 권리의 성격을 갖는 근대적 제도로 변화되었고, 보상과 기념을 두 축으로 하여 국가 발전의 핵심적 가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제열기 : 잊을 수 없는 이름

미국 버지니아 셰넌도어 국립공원에 위치한 루레이 동굴에는 이 지역 페이지 카운티 출신 73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서 있다. 이들은 제1, 2차 세계 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사람들이다. 그중 6·25전쟁에서 전사한 23명의 이름은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벽면의 명비에도 새겨져 있다.

페이지 카운티는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 주민들이 동굴 안 깊은 곳에 전사자 명비를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지구상 어디에서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에서 보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

자료읽기 : 국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전사자는 어떻게 예우해야 할까?

미국은 하와이에 전쟁 포로·실종자 확인 합동 사령부를 설치하여 세계 각지에서 유해를 수습하여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있다. 2020년 6월 25일 서울공항을 통하여 봉환된 국군 유해 147위는 북한 지역에서 수습된 유해 가운데 한·미 공동 작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워싱턴 D.C. 인근에 위치한 알링턴 국립묘지의 안장 의식은 최고의 예우를 보여 주는 현장이다. 안장 대상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운구하여 매장지에 도착하면 관을 덮었던 성조기를 정성껏 접은 뒤 유족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미합중국 대통령과 국민을 대신하여 영광스럽고 충성스런 봉사에 대한 감사로 드립니다”라고 경의를 표한 후 정중히 전달한다. 탁월한 공적을 세운 명예훈장 수훈자에게는 최고의 의전이 제공된다. 생존 시에는 연금과 특수 차량 번호판이 제공되고, 대통령 취임식 참석과 수송 시설 이용 등에서 특별한 예우가 따른다.

<다음호에 이어짐>

자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나라사랑과 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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