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찬바람에 바깥 걸음도 드물어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주변의 소음은 점차 줄어들고 고요함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면 언제 품었는지 모르는 작은 불안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누구나 한 때 거친 광야를 달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바다에 뛰어드는 꿈을 꿨으리라. 펼쳐드는 책 한 권으로 끝없이 펼쳐진 대양에서 생명력으로 넘치는 거대한 짐승들을 맹렬하게 쫓듯 오늘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불운과 역경에 맞선 한 늙은 어부의 숭고하고 인간적인 내면을 강렬한 이미지와 간결한 문체로 그려냈다. 20세기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작가 헤밍웨이의 원숙한 인생관 위에 독보적인 서사 기법과 문체가 훌륭하게 응축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걸작으로 꼽힌다.

△노인은 커다란 물고기를 많이 봐왔다. 무게가 오백 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 물고기도 여러 번 봤고, 또 평생 동안 그런 큰 고기를 잡은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혼자 잡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혼자,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이제까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었던 그 어떤 물고기보다 큰 놈과 단단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왼손은 아직도 꽉 움켜진 독수리 발톱처럼 굳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중략) 노인은 생각했다. 나도 놈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면 쥐가 난 손을 놈한테 들키겠지. 놈이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강한 존재로 생각하게 내버려두자. 아니, 난 그렇게 더 강해지고 말겠어. 차라리 내가 저 물고기라면 좋겠군, 노인은 생각했다. 놈의 이 모든 힘에 맞서고 있는 게 그저 내 의지와 머리밖에 없는 형편이니 말이야.

△노인은 자신이 이제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패배했음을 알았다. 그는 고물로 돌아가서 들쭉날쭉 부러진 키 손잡이 끝을 살폈다. 손잡이는 배 방향을 조종할 수는 있을 만큼 키의 홈에 그런대로 끼워졌다. 노인은 부대를 어깨에 두르고 배를 원래 방향으로 되돌려놓았다. (중략)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해 있었고 그저 집이 있는 항구에 돌아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요령 있게 배를 잘 몰 뿐이었다. 마치 식탁에 남은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사람마냥 밤중에도 상어들이 뼈뿐인 물고기를 또 공격해왔다. 노인은 이제 상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키를 조종하는 일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노인은 돛대를 땅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돛대를 다시 들어올려 어깨에 메고 길을 따라 올라갔다. (중략) 그러고는 엎드려 얼굴을 신문지에 대고, 양팔을 밖으로 쭉 뻗어 내밀고 손바닥은 위로 향한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소년이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노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큰 유자망 어선들조차 바다로 나가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소년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는 매일 아침 하던 대로 노인의 오두막을 찾아온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다음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주 조용히 오두막을 나와 커피를 가지러 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소년은 울었다.

△“난 놈들한테 졌단다, 마놀린.” 노인은 말했다. “놈들한테 정말 지고 말았어.” / “그놈한테는 지지 않았잖아요. 잡아온 물고기한테는 말이에요.”(중략)“이제 다시 저랑 함께 고기 잡아요.” /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난 더 이상 운이 없어.” / “그놈의 운 타령 좀 그만하세요.” 소년은 말했다. “운이라면 제가 가져올게요.” / “너희 집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니?” / “상관없어요. 전 어제 두 마릴 잡았어요. 하지만 아직 배울 게 많아요. 그러니 이제부터 저랑 함께 나가요.”

타오르는 집착마저 삼켜버린 깊고 거대한 바다

허먼 멜빌, ‘모비 딕’

허먼 멜빌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난파된 에식스호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흰 고래 ‘모비 딕’ 사이의 대결을 거대하고도 웅장한 비극으로 형상화했다. 작가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경이와 공포로 가득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능한 바다의 거대한 파도, 그 파도가 무한한 잔디 볼링장 위를 굴러가는 거대한 볼링공처럼 여덟 개의 뱃전을 따라 굴러가며 일으키는 온몸을 휘감는 텅 빈 아우성, 보트를 두 동강 내겠다고 위협하는 듯한 날카로운 파도의 칼날 같은 물마루 끝에 잠깐 올라탔을 때 잠시나마 유예된 보트의 고통, 파도 사이 푹 꺼진 깊은 협곡 속으로의 갑작스러운 추락, 건너편 물마루 위로 올라가기 위한 열렬한 자극과 격려, 그 파도의 반대편에서 뱃머리부터 곤두박질치며 썰매처럼 미끄러져 내려가는 보트. 게다가 거기에는 보트 지휘자들과 작살잡이들의 외침, 노잡이들이 몸서리치며 내쉬는 한숨, 울부짖는 새끼들을 쫓아가는 성난 암탉처럼 상앗빛 피쿼드호가 돛을 활짝 펼친채 보트들을 향해 돌진하는 놀라운 광경이 더해졌는데, 이 모두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이제 에이해브는 그토록 길고 광범위한 예비 항해를 마친 후―즉, 다른 모든 고래 어장을 훑은 후―자신의 적을 바다의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어 더욱 확실히 살해하기에 적당한 시기와 장소에 도달한 듯 보였다. (중략) 이제 이 노인의 눈에는 나약한 영혼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을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섯 달 동안이나 밤이 이어지는 북극의 밤하늘 한복판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북극성이 그 날카로운 눈을 계속 부릅뜨고 있듯, 에이해브의 결심도 우울한 선원들이 처한 영원한 자정의 어둠 위로 단호한 빛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그 빛이 그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온갖 불길한 예감, 의혹, 불안, 두려움 따위를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영혼 밑에 숨겨둔채 거기서 싹이나 이파리 하나도 돋아나지 않게 할 수밖에 없었다.

△보트의 선원들은 넋 나간 듯이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뒤를 돌아봤다. “아니, 배는? 이런 세상에, 배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이윽고 그들은 시야를 흐리는 아련한 물안개 사이로 비스듬히 기운 채 사라져가는 피쿼드호의 환영을 보았다. 마치 공허한 ‘파타 모르가나(이탈리아 남단의 메시나해협에서 나타나는 신기루)’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오직 돛대에서 가장 높은 부분만이 수면 위로 솟아 있을 뿐이었다. 한 때 우뚝 솟았던 망대에 심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충성심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 때문인지, 이교도 작살잡이들은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망루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다가 동심원을 그리며 홀로 떠 있는 보트와 그 보트의 선원들, 물 위에 뜬 노와 창 자루를 죄다 움켜쥐는가 싶더니,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거기 있는 모든 것을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여 빙글빙글 돌면서 피쿼드호의 가장 작은 파편 하나까지 남김없이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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