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시대를 이겨낸 우리는 독립·호국·민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전쟁, 독재라는 어두운 역사를 안고 있지만 독립운동, 국가 수호, 민주 혁명이라는 빛나는 역사도 갖고 있습니다. 독립·호국·민주로 집약되는 나라사랑의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보훈의 시작입니다. 보훈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에 대해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보훈의 시작은 이분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알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라사랑신문>은 새해 기획으로 ‘가족과 함께 생각하는 보훈’을 시작합니다.

보훈이 탄생하는 순간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민주주의는 사정과 상황에 따라 각지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첫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민주주의 출발의 두 가지 장면을 먼저 살펴본다.

민주주의의 시발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사례.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가져온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B.C. 429)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발생한 첫 번째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연설에 주목해 보자.

그는 “우리 헌정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권력이 소수에 있지 않고 전체 국민에게 있으며, 사적 이익을 둘러싸고 다투는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공적 직책을 맡게 되는 기준은 시민들의 사회적 지위나 공적 생활의 위치 또는 사회적 계급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이라며 아테네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전사들을 소환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지하에 묻히고 만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언행 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이 전몰자들과 그 유족에게 나라가 주는 승리의 관으로서, 그들의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를 아테네가 국고를 통해 지원해 줄 것을 오늘부터 보증합니다. 덕행에 지상의 명예를 주는 나라야말로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희생과 이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분명히 담겼다.

또 하나의 장면.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묘사로 가장 유명한 연설이 바로 미국 링컨 대통령의 연설이다. 그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미국 게티스버그의 남북전쟁 전몰자묘지 봉헌식에 참석해 2~3분밖에 안 되는 짧은 연설을 한다.

“용감한 이들이 조국을 위해 여기서 수행한 일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겨진 일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관련한 역사적인 두 장면을 보면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발언들이 공통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장례식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보답’ 이것을 우리는 ‘보훈’이라고 한다.

보훈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이 유지·보장되도록 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포함한 소중한 가치들을 공동체가 함께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여러 나라의 보훈, 그 의미

보훈은 국가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개인에 대해 그 국가와 사회구성원이 예우로 보답하는 책무를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보답 행위는 보훈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실질적·상징적 형태로 이뤄진다.

보훈의 실질적인 방법은 보상 등 물질적 예우를 통해 영예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방법은 희생·공헌의 숭고한 가치를 높이 선양하여 기억하고 후대에 계승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특히 보훈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예우이기 때문에 국가가 지고 있는 의무이자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고유한 기능이기도 하다. 보훈이념의 구현을 통해 개인의 희생·공헌이 국가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 보훈의 사회적 가치이며, 보훈정책의 궁극적 목표이다.

보훈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공동체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지켜져 온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에는 군주의 중요한 덕목으로, 그리고 현대에는 국가의 절대적 책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보훈정책의 확대와 강화를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사회 발전의 정신적 토대를 다지고 있다.

미국의 보훈이념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봉사한 제대군인의 존엄성을 영원한 상징이 되게 하고, 그들을 가장 명예로운 대상으로 국민의 존경과 예우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 보훈조직의 임무는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특별한 희생을 확고히 인식하도록 하는 것과 함께, 그 희생자들과 가족에게 필요로 하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캐나다는 보훈의 존재 이유를 ‘국민을 위한 제대군인들의 봉사를 확고히 인식하고, 모든 국민들의 가슴속에 그들의 업적과 희생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90년 국민회의 선언문에서 ‘보훈은 국가와 국민이 갚아야 할 인정의 부채’라고 정의하고 여기에 바탕해서 정책을 펼쳐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선진국들이 이야기하는 보훈의 본질은 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에 대한 보답’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보훈정책은 ‘국가가 존립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답은 국가와 국민의 기본적 책무라는 인식에 기초해 그들의 명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하는 모든 정책’이다.

그래서 보훈은 나아가 모든 국민들에게 나라를 위한 헌신이 명예롭고 존중받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함으로써 국가공동체의 영속적 발전을 위한 정신적 가치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훈정책의 대상은 국가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중요한 가치가 부여되어야 할 행위를 실현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보훈제도가 독립, 호국,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에 대한 예우를 토대로 발전한 것도 여기에 기반한 것이다. 보훈은 국가의 유지, 발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보훈의 더 나은 발전 방향

보훈정책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있게 한 희생과 공헌을 ‘애국’의 이름으로 존중하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 왔다. 보훈이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인식의 연속선상에서 이번 정부는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승격하고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크게 개선해왔다.

국가보훈처가 표방해 온 ‘따뜻한 보훈’이나 ‘든든한 보훈’ 역시 그 같은 기조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 정당한 보상을 실현하고 생활여건에 부합한 세심하고 충실한 예우 시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이다. 대표적인 예로 보훈 예산은 전년에 비해 계속 증액, 편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유공자와 유족, 6·25 및 월남전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 수준을 대폭적으로 지원을 내용을 담고 있는 이런 예산안들은 그 같은 정책기조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보훈정책은 국민의 결속과 통합에 기여하는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보훈정책 추진 역량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둘째, 국가유공자를 찾아서 예우하고 보상하는 수준을 국가 발전과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셋째, 고령의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위한 촘촘하고도 세심한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넷째, 기억의 보존과 공훈 선양을 위한 연구, 교육 등이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립, 호국, 민주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조화롭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보훈정책의 본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누락됨이 없이 그의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다른 국민에 앞선 특별한 예우를 받도록 하는 데 있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과 예우의 증진은 오늘을 사는 우리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과업인 것이다.

보훈문화와 국민통합

더 나은 보훈의 방향과 관련, 보훈문화를 통한 국민통합은 오늘과 같은 다양한 가치와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된다.

보훈문화를 통한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에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기억의 전승이 선행돼야 한다. 수많은 국가유공자의 희생으로 이뤄진 우리 근현대사는 우리 역사의 소중한 정신적 자신이다.

따라서 국가적 기억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승함으로써 역사에 기여하기 위한 선양은 보훈의 핵심적 영역인 것이다. 선양은 국민의 역사인식이나 공동체 정체성의 근거를 제공하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 보훈에 내재된 독립, 호국, 민주의 기억을 발굴, 보존, 홍보, 전승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맡은 전문적 연구·개발도 필요하다.

국가유공자의 공헌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근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조국독립과 국가 수호, 민주화,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유공자의 공헌을 기리고 보답하는 보훈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며, 이러한 마음가짐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

이 정체성이 문화가 되고, 보훈문화가 우리 사회에 충실할 때 보훈은 새로운 국민통합 시대를 여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서운석 정치학 박사, 보훈교육연구원

주제 열기 : 보훈과 헌법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조금은 멀리 두었던 헌법을 한 번 읽어보자.

헌법의 가장 앞장인 전문은 헌법의 정신을 정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내용이 된다.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전문을 보면서 우리는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 애국지사 등 독립유공자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전몰군경 등 호국유공자, 그리고 불의에 대한 민권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원리를 입증한 4·19혁명 사망자 등 민주유공자들의 공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헌법은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있다. 그 중 제32조 ⑥항은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이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권리와 의무’로 적어두고 있다.

자료 읽기 : 보훈과 국민통합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 사회에 희망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을 피하지 않고 해낸 사람들이 국가유공자이다.

이런 생각이 잘 표현된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제62회 현충일 추념사를 들 수 있다.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항일의병과 광복군 그리고 그들의 후손, 한국전쟁 참전군인과 학도병, 월남전 참전용사, 파독 광부와 간호사, 청계천 여공,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의 시민, 서해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 등을 일일이 호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독립과 호국의 전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함께 기억하자”고 하면서, “이런 분들에 대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말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렇게 언급된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과 희망을 전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보훈은 우리 사회의 빛과 희망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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