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설날, 차례상에 올라간 고 박종술 참전용사의 무공훈장.
지난해 설날, 차례상에 올라간 고 박종술 참전용사의 무공훈장.
박경영씨가 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경영씨가 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불어오는 찬바람 사이를 비집고 부산 금정구 금사동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주는 박경영(70)씨의 표정은 날씨처럼 화창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품안에 든 무공화랑훈장을 꺼내 보이며 지난해 67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무공화랑훈장을 받아든 그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마치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 했다고 말했다.

고 박종술 침전용사의 화랑무공훈장이 박경영씨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낯선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지난해 1월 걸려온 전화는 3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함을 불렀다. 국방부 ‘6·25참전 무공훈장 찾아주기’팀의 연락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놀라움은 기쁨으로 바뀌었지요.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받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출생지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군번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는다는 생각에 열일 제쳐두고 나섰지요.”

박경영씨는 인근 주민센터와 병무청,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의 병무청 등을 직접 발로 뛰어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군번과 군 입대일, 부대와 계급, 아버지가 홍천지구 전투에 참전하셨다는 사실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설날에 맞춰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게 됐고, 박경영씨 가족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지만 지난해 설날만큼은 특별하게 치렀습니다. 정성을 모아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 앞에 화랑무공훈장을 놓아드렸습니다. 둘째 아들과 함께 술을 올리는데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는지….”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은 이제 그의 가족에게 새로운 자부심이 됐다. 그의 수고로 찾게 된 훈장을 보고 형님과 여동생도 ‘고생했다, 참 고맙다’며 등을 토닥였다.

“형님은 월남전참전용사이고, 저는 군무원으로 34년간 근무했습니다. 제 둘째 아들은 알오티씨(ROTC, 학군사관)로 아버지의 뜻을 이었습니다. ‘나라사랑’이라는 단어가 남들에게는 그저 보기 좋은 말일지 몰라도 저와 제 가족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생의 중심이었는데, 이번 일로 그 의미가 더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박경영씨는 훈장을 쳐다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란 그는 가끔씩 시내에서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두 어깨가 무겁도록 책을 사주셨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위해 어려운 형편에도 책 만큼은 아낌없이 사준 아버지 덕분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또 그 때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떠올렸다. 추억을 되새기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저희 집이 잘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는 참고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없었죠. 아버지는 당시 꽤 비쌌던 참고서나 필요한 여러 책을 수시로 사주시곤 하셨어요.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은 희미하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필체가 참 멋졌던 것은 기억납니다.”

그렇게 주고 받았던 마음 깊은 글의 영향일까. 그는 군무원으로 일하던 199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난해에는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받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쓴 글을 라디오에 보냈고, 호국보훈의 달인 6월 그의 사연은 전국에 방송되기도 했다.

“저와 제 가족의 기쁨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워한 것은 물론, 방송 직후 예상치 못한 축하 연락도 많이 받았고요.”

그가 활동하고 있는 무공수훈자회 회원들도 자신의 일인 듯 기뻐하며 연락해왔다. 그는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해운대역 앞에서 무료급식을 나눠주다가 인연이 닿아 보훈단체와 연이 닿았고,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활동이 어려워 직접 만나지는 못해 아쉽지만 축하 연락만큼은 넘치게 받았다.

“덕분에 좋은 소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번을 계기로 부모님을 주제로 시를 더 써보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보훈가족으로서 느낀 여러 생각들을 담은 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뒤늦게 찾은 아버지의 훈장을 가슴에 품고, 자신도 봉사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으로 아버지의 뜻을 있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이웃사랑’의 마음을 널리 펴겠다고 한번 더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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