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눈송이가 마음 속을 가득 채운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어린 시절 붕어빵의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으로 정감을 더해준다. 가난한 시절, 시골은 낭만보다는 결핍의 자존감이었다. 겨울나무가 지키고 있는 바람의 언덕, 고향의 향수가 간절하게 그리운 계절이다.

세월의 더께만큼 소중했던 추억도 희미해진다. 살아온 흔적들이 신선한 바람이 되어 가슴이 아리다. 초등학교 시절 남동생과 나는 배고픔을 참고 산언저리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가장이 되어 늦게까지 일을 하셨다. 어머니가 와야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기다리던 어머니는 오지 않아 집으로 왔다. 배가 고프면 잠도 오지 않는다. 춥고 배고파 울다가 잠이 들었다. 꿈인지 모르겠다. 오빠가 품속에서 붕어빵을 꺼내면서 먹으라고 했다. 먹다가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붕어빵은 눌리어 작아지고 볼품없고 먼지가 묻어 있었다. 혼자 먹어도 작은 양이지만 동생과 같이 먹으려고 참았다. 그런데 언제 먹었는지 동생이 다 먹어버렸다. 화가 나서 마구 때렸다. 동생도 맞지 않고 대들며 싸웠다. 나는 코피가 나고 동생은 얼굴에 상처가 났다. 그렇게 심하게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로부터 동생과 함께 종아리를 맞았다. 온종일 붕어빵 생각에 억울하고 분했다. 그것은 언제나 먹을 수 없는 특별한 먹을거리였다. 오빠는 먼 거리 읍내에서 일하므로 자주 집에 오지 못한다. 온다고 해도 붕어빵을 사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동생이 붕어빵을 가져왔다. 어디서 가져왔냐고 묻지도 않고 둘은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돈이 없어졌다고 동생과 나를 불렀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도둑질이고 그 다음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두 가지 죄를 다 지으니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동생은 울면서 “제가 가져갔습니다” 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누나가 붕어빵 다 먹었다고 때렸고 저도 많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었다.

동생과 나는 그날 학교도 가지 말고 벌을 받으라고 했다. 어머니는 도둑놈은 배워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일을 나가셨다. 얼음처럼 찬 어머니의 표정보다 무심한 눈길이 더 무서웠다. 동생은 학교에도 안 가고 먼 길을 걸어서 오빠한테 돈을 가져왔다. 온종일 굶고 저녁 늦게 지쳐서 집에 왔다. 어머니는 동생을 보듬고 한없이 울고 계셨다. 나도 울었다. 몇 마디 훈계보다는 당신의 따뜻한 가슴으로 한번 품어주는 게 옳다고 여겨서일까?

얼마 후 어머니는 붕어빵을 동생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사 오셨다. 식구들이 다 먹고도 남았다. 늘 풍족하게 먹어보지 못한 식구들은 어머니가 왜 이렇게 붕어빵을 많이 사 온 이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족들을 위해 쉼 없이 에너지를 만들어 주신 어머니의 느낌표를 가슴에 넣어본다. 가난이 싫어서 고향을 떠나 마음껏 살아 보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와 같이 산 그 때가 가장 포근하고 행복하였다. 이제는 어머니의 기억들이 샘물처럼 남아 꿈과 희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싶다.

그 시절 특별한 먹을거리는 추억을 담고 있다. 사진은 겨울을 맞은 안동 월영교의 오후.

하택례 오랜 기간 수필과 시를 쓰면서 작품집 ‘행복한 파랑새’, 시집 ‘별빛으로 만난 행복’을 냈으며, 현재 전몰군경미망인회 은평구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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