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에 블랙이글스 추모비행이 펼쳐지고 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11일 부산 시그니엘호텔에서 열린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감사오찬에서 유엔참전용사에게 평화의 사도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개최됐다. 2007년부터 사용된 ‘부산을 향하여(턴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라는 표어로 열린 행사에는 8일부터 13일까지 방한하는 7개국 40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이 함께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방한한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행사장 입장에서부터 순서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 내 영국군 묘역에서 열린 영국군 무명용사 안장식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와 주한영국대사, 유엔군사령관이 허토를 하고 있다.

# 영국 무명용사 전우 곁에 안장

치열한 전쟁 중 전사했지만 70년이 넘도록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영국군 무명용사 3인. 그들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야 전우들이 잠든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할 수 있게 됐다.

턴투워드 부산 행사가 열리기 30분 전 영국군 묘역. 유해 안장을 위해 미리 준비된 자리는 깨끗한 잔디가 직사각형으로 자리를 열어 용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파이프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추도사가 있었고 유해봉송을 시작으로 영국국기 헌정과 하관이 이어졌다.

70년 동안 영국군 3구의 유해가 묻혀있던 경기도 파주 일대의 흙으로 허토가 이뤄졌고, 김부겸 국무총리와 사이언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유엔군사령관이 헌화하고 묵념을 올렸다. 행사 중 유엔군사령부에 근무하는 영국군 장병들이 순서에 따라 경례를 하며 선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했다.

지난달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가 열린 유엔전몰장병 추모명비 앞 원형수반에 유엔전몰장병을 기리는 달맞이꽃 4만896송이가 떠 있다.

# 전몰장병 넋 상징하는 달맞이꽃

추모의 날 행사가 열리는 유엔전몰장병 추모명비 앞 광장. 검은색 명비와 광장 앞 원형수반에는 유엔전몰장병 추모명비에 새겨진 전사자와 실종자 4만896명의 넋을 기리는 노란색의 달맞이꽃 4만896송이가 띄워졌다.

국가보훈처는 “수반에 띄운 달맞이꽃은 한국의 들녘 어느 곳에서나 자생하는 꽃으로, 안장된 한분 한분에 대한 추모와 꽃말처럼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전몰장병들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기다림의 의미를 담아 특별히 제작했다”고 밝혔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추모명비와 달맞이꽃은 서로를 비추고 있었고, 바람결에 따라 꽃들은 조금씩 움직이며 함께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유엔참전국 대표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의 헌화도 수상(水上) 헌화로 이뤄졌다.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영상으로 기념인사를 하고 있다.

# 영국 총리의 감사 영상 메시지

식장에서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추모사에 이어 대한민국 정부의 영국군 유해발굴 노력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메시지가 영상으로 전달됐다. 비대면에 익숙해진 듯 총리의 메시지는 참석자의 그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70년 전 임진강변에서 영국군과 한국군은 나란히 폭위에 맞서 싸웠는데, 그것은 참혹했던 투쟁이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전쟁이었다”면서 “오늘 그때와 마찬가지로 영국은 한반도의 평화, 번영과 안정을 위해 대한민국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주에서 유해가 발굴된 영국군 전사자 세 명을 위한 안장식을 비롯해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 감사드린다”면서 “오늘 대한민국에서 턴투워드 부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가 개최되듯 영국에서는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식(Remembrance Sunday)이 거행된다. 영국과 대한민국은 함께 전사자들의 용기와 용맹함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 참전용사의 증언과 노래

턴투워드 부산 최초 제안자인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는 전우에게 바치는 시 ‘소중한 청춘의 나날(Our Days of Precious Youth)’을 낭독해 자리를 숙연하게 했다.

“어둡고 끔찍한 시간들/ 추운 밤에 전우들이 떨면/ 으스스한 달빛이/ 떨리는 우리 빰에 닿았습니다./ 발걸음은 용감했지만 가슴은 떨리고 어둠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눈을 감아야했습니다.”

“우리의 외롭고 긴 인생 동안, 그 그림자는 길어졌지만/ 우리의 용감하고 충실한 마음을 식혀줄 마지막 밤으로 다가왔지만/ 우리의 소중한 청춘의 나날들은 우리가 사랑으로 구한 마음들을 통해 여기에 거룩하게 지켜집니다.”

노 참전용사에게는 아직도 전우들과 떨며 지새던 그 밤의 달빛이 함께하고 있었으며, 그 ‘청춘의 나날들이 오늘 거룩한 마음으로 남았다’는 고백이 오랜 시간을 가로질러 참석자들의 가슴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 전사자의 시 ‘코리아’ 노래 연주

이날 헌정공연의 노래는 캐나다 참전용사 ‘패트릭 윌리엄 오코너’가 1951년 5월 30일 전사 전날 남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다. 이름 모를 나라에서 내일의 운명을 모른 채 지었던 그의 시가 70여 년을 흘러 그가 영면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오늘이야말로 저 언덕은 사수해야 한다/ 전장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웃음기 없는 근엄함으로/ 저 언덕을 차지하게 되면/ 그 누군가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도다/ 누군가는 아내를, 어머니를/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사무치게 생각하겠지”

“누군가는 터벅터벅, 휘청휘청거리며/ 경건함으로 나지막히 기도하도다/ 대한의 언덕에 흘린 피/ 그들이 사랑한 자유의 대가라네/ 영광에 그들의 이름이 영원하길/ 천국에서 그들의 영혼이 고이 잠들길”

지난달 1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오렌지카운티 힐크레스트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렌지카운티의 기념비 준공

턴투워드 부산에 맞춰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플러턴 오렌지카운티 힐크레스트 공원에서는 1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최초로 6·25전쟁에서 희생한 미군 전사자 3만6,591명의 참전영웅 이름이 모두 새겨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준공식이 열렸다.

기념비 건립은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국고지원(사업비의 30%)이 매개체가 되어 건립위원회를 중심으로 한인 동포와 단체 등 400여 명이 힘을 모아 결실을 맺게 됐다. 현지에서는 이 사업이 한인 동포의 저력을 보여준 값진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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