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충남 안면읍사무소 대강당에서 김준희 참전용사(가운데)가 안면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행복한기부 모금 사업에 200만원을 기부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초겨울비가 내리는 충남 태안군 보훈회관 주변은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 깔끔하면서도 고요하고 아늑했다. 먼 길을 왔다며 두 팔 벌려 환대하는 김준희(89) 6·25참전유공자회 태안군지회 안면도분회장을 만났다. 아흔의 춘추에도 어르신은 더 없이 활력이 넘쳤다. 평생을 안면도를 지키며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온 어르신의 삶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듯 했다.

 

김준희 어르신은 안면도에서 ‘기부천사’ ‘나눔천사’로 통한다. 어르신은 지난해 1월과 8월, 올해 1월, 3월, 6월에 이어 8월까지 총 1,000만원을 안면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행복한기부에 쾌척했다. 이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28일에는 ‘나눔실천 유공자 포상식’에서 충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상을 수상했다. 단상에 오른 50여 명의 사람들 중에 자랑스럽게 6·25참전용사 모자를 쓰고, 당당히 어깨를 펴고 선 어르신의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

이날 사회자가 기부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나처럼 돈이 없어서 못 배우는 학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답했다. 그 짧은 소감에는 지난 세월의 아픔과 회환이 담겨있었다. 훤칠한 키에 멋진 색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힘 있게 걷는 현재 모습과는 달리 어르신은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오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렵게 살다보니 초등학교도 겨우 나오고,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특히 어머니가 힘들게 가정을 일구셨기에 열심히 벌어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농사에 전념했지요. 그렇게 농사를 짓다가 갑자기 전쟁이 터져 징집 1기생으로 전장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죠.”

그때 어르신의 나이 겨우 열아홉. 아흔이 다 된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몸서리 쳐질 만큼 생생했다. 광주포병학교에서 생전 처음 군사훈련이라는 것을 받았고, 함께 징집됐던 수많은 전우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북측과 전사자 유해를 교환하며 목격한 처참한 전우의 모습이 어르신의 마음을 오래도록 사무치게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어르신은 전우들과 가족들을 찾았다. 어떻게들 사는지, 형편이나 알고 지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모두 못 살던 때니까 다함께 생계라도 잘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조금씩 어려운 전우들이나 남편을 잃고 어렵게 지내는 미망인에게 쌀을 보내기 시작했죠. 이후 사업을 하고 점점 여유가 생기면서 참전용사와 그 가족, 독거노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찾고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이 만든 참전용사 모임은 이후 자연스럽게 6·25참전유공자회 태안군 지회 안면도분회가 됐고, 모임 초기부터 회장직을 맡아온 그는 70년 넘는 시간동안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의 나누는 삶은 자연스레 안면도를 넘어 태안군, 충남 지역으로 넓어졌고 그만큼 그의 선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김준희 어르신이 관심을 갖게 된 부분은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한 지원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끝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에 자신의 모교인 안면초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물론 기회가 날 때마다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도 이어간다. 어르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기부천사’라고 부르지만 자신은 그저 ‘고집쟁이’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웃을 향한 저의 관심을 보상을 받았는지 동생들은 물론, 일곱 자녀들도 장성해 제 몫을 해내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죠. 가족에게 공개적으로 말을 하진 않지만 제가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녀가 ‘할아버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때는 기분이 퍽 좋습니다.”

호쾌한 웃음을 가진 어르신은 앞으로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기부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편하게 잘 잔다’라는 뜻을 가진 안면도를 닮아 이웃들이 편하게 잘 지내도록 손을 내밀어온 김준희 어르신. 거친 바닷바람 같은 풍파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겨낸 어르신의 인생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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