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등 대통령 특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크즐오르다 주병원 영안실에 임시 안치되고 있다.

지난 8월 뜨거운 여름을 달궜던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은 한동안 우리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대한민국이 함께 집중했던 ‘장군의 귀환’은 카자흐스탄 당국이나 이들과 외교적 협의를 계속해온 관계자들에서부터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등 대통령 특사 3인, 현지 절차에 함께한 대한고려인협회 임원들, 유해가 봉환된 특별기를 움직인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장군의 유해를 발굴하고(파묘) 예우를 다해 처리한 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기까지의 절차를 직접 지켜온 박채원 한성대 행정대학원 외래교수의 손길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례학 전문가 박채원 교수는 국가보훈처로부터 홍범도 장군 봉환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순간, 흥분되고 가슴이 뛰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해가 묻힌 현장이 어떨지, 유해 상태는 온전한지, 아무것도 확인이 안 된 상황이기에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유해가 유실됐거나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묏자리의 흙을 퍼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군의 귀환, 그 역사적 현장에 함께하게 된 박 교수는 설레는 마음을 뒤로 하고 바로 사전 작업을 위한 회의와 준비에 들어갔다. 국가보훈처 담당자, 국방부 유해발굴단 관계자 등과 사전 회의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국내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겼다.

“현충원에 관장(棺葬)을 해야 하는데 커다란 관에 흙 몇 줌을 넣어 안장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무자에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기도 밖에 없다며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8월 9일 서울에서 출발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장군 흉상 옆으로 추정되는 묘지의 상단을 걷어내자 무려 50cm 두께의 콘크리트와 함께 20cm 간격으로 박아놓은 철근이 인부들을 막아섰다. 작업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1943년 장군 별세 후 1982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을 하고, 다시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묘지 속 관이 어떤 상황인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엔 유골의 위치를 알려줄 명정, 고인의 직책이나 본관 같은 것을 적은 붉은 천 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나무 관은 이미 썩어 옹이 몇 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2m 깊이까지 파들어 가자 두꺼운 비닐에 싸여진 유골이 한꺼번에 발견된 거예요.”

그는 이 모든 것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먼 거리를 날아와 긴장감 속에서 시작한 일의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이것이 고려인의 놀라운 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장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분명히 다시 유골을 찾을 날이 올 것이고, 장군께서 고국으로 돌아가실 그 날 최대한 보존된 유해가 남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귀환의 날이 왔고, 장군은 고려인들의 지혜 덕분에 카자흐스탄 땅속에서 자신의 유해들을 쏟아냈다. 유해발굴조사단은 이렇게 두꺼운 대퇴부 뼈는 처음 본다면서, 190cm에 이르는 기골이 장대한 장군의 모습을 말해 준다며 감탄했다. 파묘 이후 유골 수습과 입관까지가 박 교수의 몫이었다. 그는 포르말린으로 유골을 처리한 후 한국에서 가져간 삼베 한 필과 칠성판으로 관을 모셨고, 국방부 의장단이 태극기로 관포를 마치자 더할 나위 없는 감격과 안도감이 피곤마저 잊게 했다.

장군의 유해가 다음날 카자흐스탄에서의 마지막 추모식을 거쳐, 서거한지 78년만에 영원한 안식을 위해 서울공항으로 향하면서 그의 역할은 마무리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간 공부하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모여 이렇게 소중한 일에 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해부학과 근골격학을 공부했던 것이나 장례학을 공부하고 장례지도학과 교수를 했던 일, 외국인 노동자 사망 현장 등에서 봉사하며 시신을 모국으로 보내는 일까지 이 모든 것이 홍범도 장군을 모시는 중요한 일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말입니다.”

유해 봉환 후 3개월 여 지났지만 그에게 이번 모든 시간들은 모두 고맙고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남았다. 박 교수는 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 8월 18일 그리던 고국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은 이제 자신의 가슴 속에도 ‘영원한 나의 장군님’으로 새겨지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