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휴식을 위해, 누군가는 미지의 세계를 확인하는 새로운 배움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모두 원하는 바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여행은 내가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와 사람과 문화를 ‘만나는’ 과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코로나19로 모든 여행이 조심스러워진 상황 속에서 여행에세이를 통해 떠남과 만남에 대해 사유하며, 또 다른 삶과 세상을 생각해본다.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우리시대 대표 건축가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작가가 여행길에서 만난 건축과 그것이 이루는 삶의 풍경들을 기록한 인문 에세이이다. 문필가로도 이름 높은 그의 문학적 향취가 반갑다.

△내가 여행을 통해 얻는 첫 번째 유효함은 ‘진실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을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축적되는 환상이 있다. 저 멀리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과 그들의 환경에 대해 읽고 들은 지식으로 생긴 상상인데, 이는 가공이라 거짓이기 쉬우며 그래서 힘이 없다. 건축은 현실의 땅을 디디고 선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통해 현장에 서서 그 건축의 실체를 보면서 내가 가졌던 환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왔다.

여행이 우리의 삶에 유효한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의 입장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타자화된 이방인은 싫든 좋든 현실에 비켜서서 그 현실을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를 통해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사유의 세계로 모는 자이다. 자기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추방하여 경계 속의 현실을 목도하고 때론 비판하며 성찰하는 자, 이를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라고 했다. 그 결과로 여행은 우리를 종파주의와 그릇된 편견과 헛된 애국심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하는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더없이 풍요롭게 보인다.

△나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소크 연구소’를 방문하게 된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이 건축은 가운데에 비어 있는 마당을 두고 두 연구동이 양편에 도열하여 빈 공간을 태평양으로 연결시킨 불후의 명작이다. 이 건축에서 비움의 마당은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과 그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의 농도와 깊이에 의해서, 변하는 계절에 따른 하늘의 색깔에 의해서, 기후에 따라 변화하는 바다와 하늘의 표정에 의해서 비워진 마당은 수시로 다른 표정을 갖는다. 그리고 방문하는 이들의 주장과 관념의 의해서, 거주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변하는 기쁨·노여움·사랑·즐거움에 의해서 채워지고 또 비워진다.

△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길이 있다. 이제는 어쩌면 실제보다 좀 더 과장된 상상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믿기로는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바로 대구 달성군 유가면에 있는 ‘유가사’라는 이름의 절에 이르는 길이다. (중략)

바로 사람들의 발길이 돌들의 표면을 갈아서 만든 자국인데, 그 정경은 마치 세속의 인간들을 정적의 세계로 이끄는 오묘한 불빛과 같다. 그 여린 빛들을 다칠까 염려하여 숨죽이며 돌들을 딛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이 돌들 의 바다는 끝이 나고 이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본다. (중략)

여태 나는 보이는 길만 걸었고 목적지를 가져야만 걷지 않았을까. 어찌하여 걷는다는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을까. 나는 깨닫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보이지 않는 길’은 나의 삶에 잊히지 않는 길이 되었다.

“두발로 디디고 몸의 중력 받아내면 길이 된다”

서명숙 ‘제주 올레 여행:놀멍 쉬멍 걸으멍’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서명숙. 걷기 여행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나이 쉰에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제주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내 ‘올레길’을 만들었다. ‘제주 올레 여행:놀멍 쉬멍 걸으멍’에는 제주의 매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주 전역에 몰아치는 개발 바람에 걷는 길이 더 사라지기 전에, 너른 차도와 이런저런 단지가 더 들어서기 전에 길을 내야만 했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이 일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여름, 한여름 ‘와랑와랑한’ 햇볕을 받으면서 40일간 예비답사를 마치고 나서 산티아고 길 못지않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산티아고 길에는 없는 푸른 마당을 옆구리에 끼고 걷는.

그러려면 차가 진입할 수 없는 숨은 길을 찾아야, 끊어진 길은 이어야, 사라진 길은 되살려야만 했다. 그뿐인가. 없는 길은 내어야만 했다. 행정력도 자금력도 없는 일개 사단법인이 이 일을 해내는 데에는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이 뒤 따랐다. (중략)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올레가 있어 행복하다”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올레지기도 더불어 행복하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와랑와랑한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흙길을 팬티와 수건이 담긴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던 여름날이.

바닷속 날카로운 돌멩이가 여린 발바닥을 찢어놓는데도 우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짠물을 너무 들이켜 목이 다 쉬고 귀가 멍멍해질 때까지, 우린 몇 번이고 물속에 들락거렸다.

입술이 새파래지고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면 내팡돌에 엎드려서 꼬치처럼 몸을 굴려가며 햇볕에 말리곤 했다. 그러다 몸이 덥혀지면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고. 운동신경이 젬병인 나는 개헤엄이 고작이었지만, 내 또래인데도 자맥질을 해서 미역이랑 소라 따위를 건져 올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태껏 내가 먹어본 가장 맛난 성게는, 소낭머리 맞은편 너럭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 친구가 잡아와서 나눠먹은 것이었다. 새까만 성게를 돌멩이로 내리치는 순간 터져나오는 노오란 속살! 갯내음 물씬한 그 맛을 어찌 잊을까.

△사람들을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모래사장길, 헉 소리가 절로 나는 주상절리 전망대, 울퉁불퉁한 갯바위에 몸을 딱 붙이고 가는 길, 암반과 암반 사이를 겅중겅중 건너는 길, 산방산을 향해 경배하듯이 몸을 낮추고 올라가는 사구언덕길, 모래땅을 뒤덮은 순비기나무 군락길, 홀연 나그네의 땀을 식혀주는 호젓한 소나무 길.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조차 도전할 수 없는, 오로지 걷는 사람들만을 위해 선물처럼 주어지는 길, 화순해수욕장에서 용머리 해안까지의 ‘화순 해안길'은 올레코스 중에서도 명품 길이다.

본디 사람이 걷는 길이 그러했다. 콘크리트 없이도,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아도, 폭이 넓지 않아도 된다. 두 발로 디딜 수 있고, 몸의 중력을 받아낸다면 길이 된다. 가끔은 한 발만 디뎌도 된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길은 존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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