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항식 참전유공자를 바라보는 아들 김용귀 작가의 얼굴에 애정과 존경이 우러난다.
김영귀 작가의 작품.

이른 가을비가 내리는 경기도 평촌의 아파트는 조용하지만 단정한 모습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주는 부자는 김항식 참전유공자(92)와 서예로 평생을 살아온 아들 김용귀 작가. ‘따로’ 그러나 ‘자주 함께’ 사는 부자가 잡은 손이 더 없이 정겹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참전유공자와 아버지를 닮아 60여년의 세월을 당당하게 살아온 아들이 오늘은 진지한 이야기로 머리를 맞댄다.

부자가 오늘 자리를 함께 한 것은 김용귀 작가가 용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회를 찾는 국가유공자께 사군자 작품을 한 점씩 기증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상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화단에서 그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열심히 살아온 아들이 작품을 내놓는다면 좋은 일이지. 어디선가 함께 전쟁을 치렀고 이제는 연세를 드신 분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우리 아들이 훌륭한 생각을 했구먼.”

대견하다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과 눈빛에 자랑스러움과 고마움이 함께 비친다.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자주 찾아와 옆을 지켜주고 있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기 그지없다. 아들에 대한 취재차 방문했다 하니, 내친 김에 아버지가 지난 살아온 얘기도 함께 나누자 했다.

“전쟁이 터지자 징집 1기생으로 전쟁터로 나갔지요. 군번 68015**. 소총 한 번 쏘아보지 않고 포항전투에 참전했어요. 7개월여 만에 나는 파편상을 입고 전역을 하게 됐지요. 부상 직후 치료를 거쳐 전우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다시 돌아온 고향, 전북 고창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전쟁 전의 직장인 고향마을 초등학교 교사로 돌아왔다. 그 후 당시 원호청의 지원으로 서울의 모 대학교 교직원으로 취업해 아이들을 모두 바르게 키워냈다. 그는 학교에서 ‘재흥회’라는 이름의 군경유가족 모임을 만들어 5년간 회장으로 일하며 국가유공자와 가족인 직원들 간의 친목과 봉사활동을 이끌기도 했다.

다음으로 김용귀 작가가 얘기를 이어받았다. “아버지께서 전쟁에서 상이를 입으신 참전유공자라는 것이 저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셨고, 교육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국가유공자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항상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1971년 당시 조선공업고등전문 2학년으로 참여했던 전국원호자녀웅변대회를 기억한다. 학교 대표로 선발돼 서울시민회관 단상에 서서 바라보았던 강당을 가득메운 학생들의 열기, 그리고 그가 쏟아냈던 열띤 이야기들. 정확하게 올해로 50년 전이지만 지금도 생생한 기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때 고등부 3등으로 입상해 받았던 장동운 원호처장 명의의 상장은 아직도 자랑스레 그의 서재를 장식하고 있다. 그만큼 참전유공자 아버지의 아들로 남들보다 조금은 더 반듯하게, 우리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은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저도 아버지처럼 대학에서 교직원의 길을 걸었습니다. 25년간 단국대 도서관에서 근무했지요. 도서관 근무를 하면서학창시절 서예반장으로 활동했던 것을 살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며 평생을 작가로 살게 됐습니다.”

30여 년간 정진해온 그는 세계서예비엔날레를 포함해 130여 차례의 초대전에 참여했고,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열어 작품세계를 정리했다. 이번 개인전은 세 번째 개인전이자 이웃을 향한 재능기부, 나눔의 개인전 성격을 띤다. 이번 전시 주제는 ‘사군자 묵향! 코로나에 지친 당신을 위로하다’로, 용인시 장욱진 고택에서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매일 관람객 20명에게 작품(비표구)을 기증하기로 계획했으나, 아버지와의 상의를 거쳐 국가유공자에게는 모두 작품을 기증해 드리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연세 드신 어르신 집에 난 작품 하나씩 걸어두시면 가끔씩 난의 그 힘찬 줄기가 힘든 세월을 견디시기에 조금이라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작품 판매보다는 재능기부 차원에서 더 많은 분들께 제 작품을 나눠드리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한글서체를 편찬해 4권의 책으로 엮어낸 김 작가는 2006년 문화포장을 받았다. 서예가로서의 삶과 우리 서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욕이 오늘의 그를 만든 셈이다. 그가 새로 내딛는 국가유공자와 나누는 삶이 이번 전시회를 기점으로 활짝 펼쳐질 듯하다.

<전시장: 경기 용인 ‘장욱진 고택’, 기간: 10월 28일~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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