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통일 여론

광복 76돌을 보낸 이 시각, 한반도 통일의 시계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총성이 그친 1953년 7월 27일을 기준으로 볼 때 2021년 8월 지금은 몇 시인가? 12시가 통일이라고 한다면 6시는 넘어섰는가?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전문기관의 통계를 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통일에 대한 지지도는 50%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2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통일의 첫 번째 이유로 거론되던 민족 재결합에 대한 응답치도 줄어들었다. 대신 전쟁위험 제거와 같은 평화의 가치가 높아졌고, 이산가족의 고통 해소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어 한국의 선진국화라는 응답도 보인다. 한편 미래 통일의 주역이 될 청년층의 통일 지지도는 30%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현상은 통일이 집단(민족이나 국가)에 줄 편익과 개인에 줄 편익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통일과 관련한 여론이 시사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기존의 집단주의적 통일론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하는 데 비해 평화, 인권, 인도주의 등 보편가치와 나의 미래와 같은 실용주의적 시각이 높아지는 추세는 뚜렷해지고 있다. 또 보건·기후위기와 같은 세계적 문제들과 통일 문제를 별개로 생각해온 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반성도 귀 기울일 만하다.

남북관계는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일종의 ‘규칙성’을 띠고 있는데 지금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는 전문가들도 쉽게 합의하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판문점, 평양,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후 시범적이나마 합의 이행 노력도 해보았지만 결국 큰 진전 없이 핵 문제로 대화가 중단되고 말았다. 전쟁을 거친 장기간의 불신이 단기간의 협력 노력을 쉽게 덮어버리는 형국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통일을 내다보며 보훈을 더 멀리, 더 넓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북의 보훈제도 비교

남북은 통일을 숙명으로 안고 있는 분단체제를 구성하면서 그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과 협력을 거듭해왔다. 여기서 ‘통일을 향한 보훈’은 남북이 체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 한반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논의하는 의미가 있다. 그 중 남한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보훈제도는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보훈은 그 나라의 존재 자체와 이념 수호, 국민 보호를 위해 헌신·희생한 사람들과 그 가족에 대한 위훈과 보상, 그리고 제반 선양사업을 일컫는다. 그러나 서로 적대했던 국가들 사이의 보훈제도는 상호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해당 국가들 사이의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냉전시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대립이 대표적인 큰 예이다. 또 이념 대립과 관계없이 과거 영국과 독일, 독일과 프랑스, 현 남북 사이프러스, 한중일 사이에서도 각각의 보훈정책에는 상호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남북의 보훈제도에는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통일 보훈정책을 설계할 때 계승할 부분과 지양할 부분이 공존한다. 공통점은 국가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위훈과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비롯해 상대를 적대시하며 군사 활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통일 보훈을 고려할 때 논외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다. 물론 통일 보훈제도를 논하더라도 분단이 지속되는 한 남북 각각의 기존 보훈제도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계승할 만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경우 민주화 운동 희생자와 국민 생명 보호에 힘쓰다 희생된 사람들, 북한의 경우 체육·예술·과학자들이 해당하는 ‘공로자’들은 계승을 검토할 만하다. 물론 이 경우도 남북 간 체제의 차이로 인한 이념적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통일 한반도의 통합과 보편가치를 염두에 둔다면 서로가 함께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계승’과 ‘지양’ 사이에서 보다 깊은 토의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독립운동 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이다. 남한은 최근 들어 독립유공자들을 폭넓게 보훈대상에 포함하고 있는데 아직 이념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상황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는 김일성 주도의 항일빨치산운동 참가자로 보훈대상을 분명히 한정하고 있다.

만약 남한이 광의의 보훈제도를 적용해 북한의 보훈대상을 포함시킨다면, 그리고 북한이 기존의 한계를 넓혀 남한의 입장으로 수렴한다면 그 자체가 통일 보훈의 첫 번째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보훈기본법을 기준으로 본다면 ‘일제로부터의 조국의 자주독립’과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의 보호 등 공무수행’에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로 통일 보훈의 1차 대상으로 삼을 가치가 크다. 이 부분은 통일을 우리 민족의 과제로 생각한다면 피해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통일 보훈제도의 방향

사실 통일 보훈제도의 구체적인 설계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현재의 의견은 하나의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현실적으로 공론화할 내용이 되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다가올 통일이 어떤 모양일 것인지에 따라 통일 보훈제도의 내용은 많이 달라질 수가 있다. 하지만 통일 한반도를 대비한다면 그에 걸맞은 보훈제도의 기본적인 방향만큼은 지금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일시대 보훈제도의 방향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시대를 규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우리 헌법을 적용한다면, 통일은 평화통일의 방식이며 민주주의의 구현과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라는 방향을 띠게 된다. 이는 평화가 통일의 수단 및 절차(소극적 평화)이자 동시에 그 목표(적극적 평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우리 국민의 통일 여론과 지구촌의 여러 가지 ‘실존적 위기’ 상황을 감안한다면 통일은 ‘민족 재결합’은 물론 ‘국민의 존엄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구상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기존의 고질적인 지역 분쟁 외에도 식량, 보건, 기후,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지구 자체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 상황은 또 우리 국민의 통일여론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이념과 집단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통일관은 냉전 시대와 가부장제 사회, 그리고 성장 중심주의 시기에서는 통용되어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민주화, 개방화, 정보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향의 통일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것은 바로 평화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이런 대안적인 통일관도 포용한다. 그래서 한반도는 세계에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 민주주의를 더 깊고 더 넓게 발전시켜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는 것이다.

통일 보훈제도의 범위

이런 상황에서 통일 보훈제도를 그려본다면 분단시대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교육을 지속해나가되, 통일시대의 방향에 부응하지만 그동안 소외받아온 희생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이 합의한 통일 3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에 부합하면서 통일에 헌신한 분들에 대해 남북이 공동으로 선양하는 것도 통일시대 보훈제도의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사회 각 방면에서 대화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보훈 교육·문화사업을 활성화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엔 헌장의 정신을 구현하려다 이역만리에서 희생당한 우리 국민, 그리고 비무장지대(DMZ)에서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다 지뢰 피해를 본 남북 공동사업단원 등 인류의 보편가치 속에서 예우할 만한 희생을 보훈의 틀에서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통일을 향한 보훈은 국가와 민족에서 출발하되 세계를 향하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존엄한 삶을 품어 안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통일 시계’도 점점 더 튼튼한 심장으로 달려 ‘번영의 한반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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