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말은 참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그것은 나라별로 ‘한국문화’ ‘미국문화’ ‘중국문화’라든가, 대륙별로 ‘아시아문화’ ‘유럽문화’ ‘아메리카문화’ 등 특정 지역의 제반 문화현상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또 생로병사에 관한 고유 관습의 특성을 나타내는 ‘결혼문화’ ‘장례문화’ 등과 의식주의 형식을 규정하는 ‘복식문화’ ‘음식문화’ ‘주거문화’ 등 일상생활의 풍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행위, 절차, 제도, 규범 등이 ‘문화’라는 말과 결합해 쓰이고 있다.

즉, 문화는 인류 역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 놓은 모든 것-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예술, 학문, 문학, 제도 등-의 특성이 녹아있는 특정 사회의 여러 현상을 일컫는다. 따라서 문화는 매우 방대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또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이중적, 다원적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훈’도 이러한 문화 가운데 발현되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국가보훈기본법 제1조에서 목적한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 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하는 행위에 속하는 제도, 규범, 관습 등 일체의 문화적 산물을 ‘보훈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훈문화는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운 표현이다. 이는 보훈문화의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보훈문화라는 말은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표준어로서의 보훈문화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보훈과 문화가 합쳐진 합성어로 존재할 뿐이다. 보훈문화라는 단어가 표준어로 쓰이는 그때가 바로 문화현상으로서의 보훈이 정착되는 시기이다.

보훈, 문화로서의 가치와 조건

문화로서의 보훈이 우리 사회에 발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일상에서 아주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지속적으로 습득·공유·계승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식사할 때 쌀밥 먹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한 치의 의구심도 없으며, 그 양식이 후대에 계속 전해지는 것, 이것이 문화인 것이다.

보훈 역시 그 행위가 아주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 한 치의 의구심도 없는 생활 속의 일부가 되었을 때 비로소 보훈도 하나의 문화현상, 곧 보훈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문화의 조건은 일정한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에, 그 지역의 사회구성원이, 습득·공유·계승하고, 그것이 행동이나 생활양식으로 규범되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유형 무형의 정신적 또는 물질적인 일정한 형태의 발현이다.

보훈 역시 문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위 조건에 부합하는 일련의 시간과 공간 배열과 사회구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계속해 오며 전승한, 특정한 보훈 행위가 일정한 양식으로 습득·공유·계승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보훈이 문화로 정착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국민 누구나 국가에 희생하거나 공헌한다면 그에 합당한 권리와 대우를 받게 되는 사회’로 당연시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로서의 보훈은 우리 사회와 시민들, 나아가 국가의 수준과 품격을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문화원형(文化原型)’으로서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문화로서의 보훈, 확산을 위한 전략과 기획

이제 우리는 문화로서의 보훈을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해 보아야 시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훈 정책이나 사회 제도는 강화되고 있으며, 국가에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과 예우도 널리 인식되고 있다. 이렇듯 보훈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다만 문화발현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한국 대중가요(K-Pop)처럼, 나아가 한국문화 전반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단시일에 일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훈문화도 장기적인 시간투자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것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며 전략적인 기획을 통해 확산해 나갈 수 있는 주체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재 이를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기관은 국가보훈처이다. 국가보훈처는 다양한 보훈정책 가운데 선양, 기념, 현충시설, 공훈 관리 및 발굴 등의 업무를 통해 문화적 측면에서의 보훈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부서의 고유 행정 업무가 있기 때문에 보훈문화 사업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문화로서의 보훈에 대한 전략을 기획하고, 그것의 확산을 전담할 인력 양성과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조직으로는 보훈교육연구원이 ‘보훈의 가치와 의미를 확산하고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보훈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관련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보훈교육연구원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라는 의료복지 전문 기관에 소속되어 있어 보훈문화 사업의 전담조직으로 역할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보훈교육연구원의 운영 취지와 그동안의 사업 실적을 살리면서 보훈문화를 적극 선도할 수 있을 새로운 기관의 발전적 설립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에서 ‘보훈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안’(2021. 6. 29)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법안 제2조는 보훈문화를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체감을 높이는 문화 활동과 그 문화적 산물’로 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문화로서의 보훈을 일목요연하게 정의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보훈문화 확산기관 지정(제10조), 보훈문화 전문 인력 양성(제12조)을 비롯하여, 궁극적으로 기존 보훈교육연구원을 승계(부칙 제3조)한 보훈문화진흥원의 설립(제14조)을 규정하고 있다. 이 전담 기관을 통해 보훈의 가치와 의미를 확산, 문화적으로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우리 시대 보훈의 문화화를 지향하는 매우 시의적절한 법안이다.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우리 사회에 보훈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매김하는 시기가 곧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일상 속의 보훈, 인식의 전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선에서 일제와 투쟁하다 감옥에 수감된 생존지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목숨 내 놓고 하는 것’이라는 희생정신이 기저에 있다.

그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족을 위해 일신의 안위와 가족을 모두 버리고 헌신한 것이다. 그 정신은 6·25 한국전쟁기에 젊은 군인들에게, 어린 학도병들에게, 국민들 개개인에게 이어져 북한에 맞서 싸운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 속에서도 희생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

그 정신이 1950년대 빈곤한 나라에서 2021년 지금 경제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는 기저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보훈문화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보훈이 우리 스스로에게 습득되어 공유되고 계승되어 왔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까이에 독립·호국·민주, 사회공헌과 관련된 유적지나 기념관, 전시관 등의 많은 공간들이 있고,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진행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즐비하다.

중앙과 지방정부는 독립운동이나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 관련 사적지를 발굴, 보존 선양하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으며, 관련 기념관 건립 등의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역시 국내외 사적지 탐방, 보훈문화상 시상,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호국인물 선양 사업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보훈을 인식시키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듯 보훈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문화로 존재해 왔다. 다만 그동안 우리의 인식에서 멀어져 있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보훈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때이다. 나와 상관없는 먼 곳의 일이 아닌, 내 주변 가까이의 시설을 이용하여 국가를 위해 희생 공헌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보훈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 각양각색의 플랫폼-언론, 방송, 모바일, 연극, 영화, 게임, 음악, 미술, 문학 등등-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것도 보훈에 관한 문화적 행위이다. 또 독립·호국·민주, 그리고 사회공헌과 관련된 각종 강좌와 체험, 탐방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것도 보훈을 문화로 습득·공유·계승하는 것이다.

보훈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향유하는 것, 즉 보훈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기억과 공유, 전국의 기념 공간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기억, 그것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실제로 보이는 실물을 통한 구체적 경험의 공유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땅의 역사적 현장과 함께 상징물 혹은 기념 공간을 통해 헌신한 선열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그것을 공동체 미래를 위한 동력으로 삼는다.

독립·호국·민주의 역사와 정신을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가장 먼저 전국의 국립묘지를 꼽을 수 있다. 2개 서울·대전의 현충원과 지방의 호국원, 민주묘지가 그것이다. 넓게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현충일과 각 기념일 행사가 이뤄지는 이곳은 선대를 모신 유족에게는 추념의 공간으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이들에 대한 기림과 학습의 공간으로 위치한다.

우리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지키기 위해, 바르게 세우기 위해 헌신한 선열의 정신을 보다 분명히 확인하고 잇기 위해 역사현장과 함께 그 가까운 곳에 세워진 다양한 기념관을 찾을 수 있다.

독립 관련 기념관은 아우내 만세운동 현장에 가까운 천안의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악랄한 고문생활을 견뎌낸 서울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올해 말 개관을 목표로 공사 중인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등이 있다. 백범김구기념관과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등 특정 의사와 열사 기념관 등도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호국 기념관으로는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과 함께 낙동강전투 현장인 경북 칠곡의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전남 순천의 호남호국기념관이 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기념관들이 치열했던 전투현장 인근에 지역별로 산재한다.

민주 기념관으로는 서울 강북구 4·19민주묘지에 세워진 4·19혁명기념관과 광주의 광주광역시4·19혁명역사관, 경남 창원의 3·15기념관, 광주광역시의 5·18기념공원과 5·18자유공원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 생활 속의 현장과 기념관에서 공동체의 유지·보전·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이들의 고귀한 삶을 생생하게 느끼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 지금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함께 내일로 향하게 한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들 다양한 기념관과 박물관 등을 휴대전화 등으로 검색하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내손안의 보훈기념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 중 최종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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