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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향하던 적 격퇴한 ‘마지막 방어선’ 수호 전투6·25전쟁 격전지 순례 - 영덕·포항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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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5  11: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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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당시 포항시가지 모습.
영덕·포항 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동해안의 영덕·포항 일대에서 국군 제3사단이 증원부대와 함께 영덕과 포항을 점령한 후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5사단의 기도를 저지하고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전투이다. 이 전투를 통해 적 제5사단은 당초 기대했던 국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2주일이 넘도록 영덕지구에서 지체함으로써 그들이 기도하던 작전계획의 이행에 큰 차질을 초래했다. 이로
   
▲ 해상철수 상황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써 아군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인천상륙작전 등의 전환점을 마련해 6·25전쟁 전황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한 것이다.

적 제2군단은 8월 공세의 주공을 대구로 지향하는 한편 적 제5사단을 조공으로 동해안 축선에 투입해 7월말까지 포항을 점령한 후 경주 - 울산 - 부산 축선으로 진격할 발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포항은 항만과 철도, 육로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동해안 최대의 병참기지일 뿐 아니라 포항 남쪽 6킬로미터 지점의 영일비행장은 미 제40전투비행대대가 주둔해 지상부대를 근접 지원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포항에서 북쪽으로 4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영덕은 횡격실 능선이 북쪽에, 하천장애물인 오십천이 남쪽에 형성된 포항방어의 전초기지였다.

적의 포항점령 귀도 격퇴국군 제3사단은 7월 중순부터 적 제5사단과 일진일퇴의 격전을 전개해 영덕을 장악하고 있던 중, 8월 8일 야간에 감행한 적의 파상공격으로 방어선이 와해돼 남쪽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때 제22연대장은 임의로 오십천교를 폭파함으로써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영덕 - 강구전투도 종료됐다.

제3사단은 제23연대로 오십천 남안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제22연대를 남호동으로 철수시켰으나 흥해 남쪽 냉천동에 적이 출현해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포항이 피탈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워커 중장은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해 영일비행장 방어임무를 지시했고 육군본부도 민부대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8월 11일 아침 포항 시내로 진입한 적은 학도의용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포항을 점령했다.

이 무렵 후방이 차단된 제3사단은 장사동 일대에서 교전을 반복했고, 흥해 북쪽에서 적이 출현함으로써 협공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 상황에서 제3사단은 육군본부의 해상철수 명령에 따라 8월17일 6시 철수작전을 전개해 성공적으로 구룡포에 도착했다. 또한 민부대는 형산강 남쪽 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후 미 전차소대의 지원 아래 포항 시가로 진입해 포항을 탈환했다.

이어 제26연대를 배속 받은 제3사단은 법천동 - 양덕동을 연결하는 주저항선을 형성한 후 93고지에 대한 적의 반복된 공격을 물리치고 포항을 재점령하려는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제3사단은 9월 공세시 적 제5사단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중앙의 주저항선이 와해돼 효자동 - 두호동 선으로 후퇴했다. 사단은 최초의 주저항선을 탈환하기 위해 역습을 전개했으나 실패하는 등 포항의 위기가 계속됐다.

이에 제3사단은 형산강 남쪽으로 이동해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나 제10연대의 작전상 과오로 인해 방어선의 일부가 와해됐다.

유엔 해·공군과 작전사단장은 적의 후속병력을 저지하는데 주력했으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전황이 불리해짐에 따라 형산강 방어선에서 송정동 - 장동 선으로 물러나 새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어 사단이 옥녀봉을 탈환하고 운제산의 적 후방을 차단하자 드디어 적은 지지를 포기하고 북쪽으로 퇴각을 시작했다.

이렇게 7월 하순 포항을 점령한 후 부산으로 진출하려던 적의 기도는 유엔 해군과 공군으로부터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은 제3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좌절됐다.

이로써 적 제5사단은 낙동강 전선의 동부지역을 돌파하는데 실패했고, 국군 제3사단은 포항지역 북방으로 후퇴한 적을 추격해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해상철수와 학도의용군의 사투

1950년 8월 15일 새벽. 영덕 남쪽에 위치해 있던 국군 제3사단은 남쪽의 포항이 적에게 점령당하고 퇴로가 차단되면서 적의 협공으로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철수명령을 받은 사단장과 참모들은 해안선을 답사한 후 선박 접안이 유리한 곳을 확보하고 제23연대 엄호 아래 독석동 해안에 제22연대를 배치했다.

다음날 21시 철수용 LST 4척이 접안할 것이라는 전문을 받고 기밀유지를 엄명한 후 철수계획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16일 21시 일제히 공격을 가해 대치중인 적을 격퇴한후 해안대로 철수하고, 17일 새벽 4시 신호탄이 발사되면 지체 없이 철수한다. 일선대대가 승선하기 이전에 병력승선와 장비 탑재를 완료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결국 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돼 17일 6시에는 부상자 125명을 포함한 사단병력 9,000여 명과 경찰 1,200명, 지방공무원과 노무자 피난민 등 1,000여 명이 승선을 마쳤다. 날이 밝은 후 철수작전이 진행된다는 내용을 확인한 적이 포사격 등을 시작했으나 3척의 LST는 해안을 출발한 상태였으며 나머지 1대도 잔여 인력을 서둘러 승선시킨 후 7시 독석동 해변을 떠남으로써 철수작전은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포항을 지키던 제3사단 후방지휘소가 설치된 포항여중에는 10일 저녁 의성지구로부터 도착해 있던 71명의 학도병이 있었다. 이들은 사령부 방어 임부를 부여받고 다음날 적과의 전투를 치열하게 벌였다.

오후 3시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학도병들은 가진 실탄과 수류탄을 다 소진할 때까지 교전을 전개해 50~60명의 적을 사살했으나 47명이 전사하는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이렇게 학도병들이 적의 포항 시내 진출을 저지하는 동안 제3사단 사령부와 지원부대, 행정기관 등이 무사히 안전지대로 대피할 수 있었다.

철수작전이 있던 15일에도 군단예비대로 확보했던 민부대가 포항 탈환에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민부대는 18일 포항 탈환 즉시 북으로 퇴각하는 적의 추격에 나서 천마산을 목표로 전진하며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도 했다.

   
▲ 기념관에서 나라사랑교육을 받고있는 학생들.
   
▲ 당시 학도의용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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