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들과 현충탑 주변 정화활동을 마친 뒤 참배하는 조춘선 씨(왼쪽)의 모습.

눈이 시리도록 푸른 동해바다를 따라 강원도 고성의 거진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 작은 바닷가 마을에 한 미용실이 있다. 그곳에서 평생을 고향사람들과 정을 쌓으며, 봉사를 삶으로 이어오고 있는 조춘선(75) 씨가 있었다. 그는 군부대 미용 봉사활동, 장병들을 위한 민간상담원, 요양원 봉사활동, 지역 충혼탑 참배와 주변 정화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고, 2001년부터 18년간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고성군지회장으로 일해왔다. 그리고 지난달 21일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의 ‘장한어머니상’을 받았다.

 

조춘선 씨는 곧바로 장한어머니상과 함께 부상으로 주어진 상금을 다음날인 22일 고성군청에 기부했다. 평생을 이웃 향한 마음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동안 미망인회의 일원으로 봉사를 많이 해 왔지만 돌이켜보니 그간 베푼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상금을 받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웃들과 한 번 더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더 없는 축복일 따름입니다.”

그는 오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에 동생들을 잘 돌보고 살림도 도맡아하는 손이 유난히 야무진 사람이었다. 친구 소개로 월남전참전용사이자 직업군인이었던 임응복 씨를 만나 22살에 함께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남편을 여의고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차렸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소명에서 비롯된 결심이다.

고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함께 일하는 막내 동생과 틈틈이 시간을 쪼개 요양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요양원 어르신의 머리를 잘라드리는 일은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다.

“요양원 어르신들은 다 제가 어릴 적부터 알던 분들이에요. 저는 기억 못하셔도 제 할아버지 이름이나 별명을 대면서 그 손녀라 하면 대번에 알아듣고 반가워하시죠.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고 제게만 머리를 맡기겠다는 분들을 보며 뭉클하기도 하고, 더 챙겨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다들 제가 봉사하는 거라고 하지만 오히려 제가 치유를 받습니다.”

어느덧 봉사로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자 인근 군부대에서도 조심스레 요청을 해왔다. 젊은 군인들이 처음에는 머리를 맡기는 것을 머쓱해하다가 그의 솜씨를 보고 나서는 너도나도 머리를 잘라달라고 줄을 섰다. 그러면 그는 누나 같은,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덕담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본 부대 사단장은 민간상담원을 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 왔다.

“부대 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병, 여러 고민이 많은 장병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제가 특별히 한 건 없습니다. 그저 솔직하게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병들에게는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넉넉한 미소로, 기댈 수 있는 어른으로 장병들에게 힘이 돼 준 그는 지금도 길에 군인들이 보이면 각별한 애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도 국가유공자 미망인이기에 더욱 더 전몰군경미망인회에 대한 관심도 특별해졌다. 홀로 현충원을 참배하러 갈 때와는 달리 회원이 함께 참배를 가면 훨씬 든든했다. 옆자리의 빈틈을 메우며 20년 가까이 매년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을 다녀오며 회원들과 함께 생을 나눴다. 그러면서 얻은 에너지는 미망인회의 지역사회 봉사활동 참여로 이어졌다. 명절이면 홀로 계시는 분들을 위해 송편을 빚고, 연말이면 김치를 담아 나눠드렸고, 목욕봉사도 하며 이웃과 함께 해왔다. 홀로 하는 봉사보다 단체로 하는 활동은 의미가 더 컸다.

그간의 여러 활동들로 그는 2001년에는 고성군수 표창장을, 2014년에는 강원도지사 표창장, 지난해에는 강원일보에서 선정하는 강원보훈대상을 받았다. 코로나로 미용 재능기부나 대면 봉사가 어려워 상황이 좋아지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국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었으니 보훈가족의 한 사람으로 참 고맙고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많은 보훈가족들이 서로 돕고, 또 받은 도움을 이웃에 돌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의 감사와 기부의 삶은 고성 앞바다의 푸르름을 닮아 더욱 빛나고 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