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보던 중 글자가 없는 하얀 공간에 마침표와 같은 까만 점을 우연히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무의식 중에 손가락으로 가만히 누르려 하자, 까만 점이 그만 조용히 날아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과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처럼 제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벌레일지라도 자기의 생명과 목숨은 소중하고 아까운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의 보신과 쾌락을 위해 남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미세먼지 수와 같은 일체 생명들, 티끌만한 날고 기는 벌레들도 자기의 목숨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아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함부로 무시하면서 오직 자신의 보신과 쾌락을 위해 박쥐와 천산갑 같은 동물을 해쳐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기에 대항할 힘이 없는 동물들이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원망에 젖은 박쥐나 천산갑을 식용으로 쓰면서 우리 몸이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 아닐까요.

바이러스는 사람의 몸에 있으면 사람의 몸을 위하고, 동물의 몸에 있으면 동물의 몸을 위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류에게 코로나19가 주는 극심한 고통은 오직 인간의 몸뚱이만을 위해서 일으킨 어리석은 탐욕의 과보(果報)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코로나19의 고통은 동물을 통해 자신을 보신하고자 하는 탐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고통도 없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으로 인해서 있고, 싫어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서 있는 법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아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남의 생명을 나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게 되므로 남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게 됩니다. 더불어 고통도 들어올 여지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입니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은 나를 위해 있고, 나는 남을 위해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평화이고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오늘의 질병과 그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제훈 월남전참전유공자이며 현재 경북 안동에서 글을 쓰면서 마음수련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